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할머니와 함께 하려했던 일을 시작하려 해요.
내년엔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펜데믹 시대에 거동이 불편해 오도가지 못하고 집안에 홀로 남은 노인들을 염두에 둔 사업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담아둔지는 몇 년 되었으나, 구체화시킨 건 작년부터다. 코로나와 함께한 한 해를 보내며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망설이는 마음에)모자란 내가 해서 망치더라도 꼭 내가 망쳐놓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사업을 시작할 때가 되면 꼭 외할머니랑 함께 만들려고 했었다. 사업의 아이템을 기획하고, 구성하고, 시연하는 일을 할머니랑 함께 하면 엄청 완성도있게 기획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까지만 회사를 다니고 내년부턴 사업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매일 아침 더 짙어지는 역대급의 2020년이었다. "올해까지만 하면!" 이런 생각으로 살면 어째뜬 버틸 수는 있다. 할머니한테도 그렇게 말했다.
"우선 9월 행사만 끝나면 함 갈게요 할머니. 코로나 좀만 더 조심 하시구요."
통화 후 1주일이 지났다. 닥친 일들을 마치고 나니 생각보다 여유로워, 이번 주말엔 할머니댁에 다녀올까? 하던 날. 그날 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퇴근길 회사를 나서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계단에서 크게 넘어지셨는데, 상황이 심각하다고 한다.엄마 혼자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해서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나도 병원으로 향했다. 펜데믹 시기의 병원은 인류가 멸명한 시기의 비어버린 건물 같았다. 할머니도 구급차에 실린 채로 병원 몇 곳을 지나 겨우 응급 수술을 시작했다. 병원 출입을 통제하는 시기였는데, 그걸 관리하는 직원들도 우왕좌왕하며 혼란스러워한 덕에 나를 들여보내주었다. 얼마안가 나는 수술실 앞에 있다가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났다. 이모들이 오길 병원 입구에서 기다리며 '엄마의 죽음'을 예감한 채 수술실 앞에 혼자남은 엄마와 카톡을 했다.
이모들이 온 뒤 병원 앞의 모텔을 잡아 대기하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그때도 나를 못 들어가게 해 한창 실랑이가 있었다. 여러모로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아빠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와 달리,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은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싫고 미운 마음이 없어서인지, 체력소모도 덜했던 것 같다. 상조회사에 온 분이 이런 저런 절차를 알려주는 걸 챙기고, 이모들을 대신해 총무를 보고, 몇번 반복되는 제사때마다 근처 마트에 가서 할머니가 좋아하던 것들을 하나씩 사왔다. 조니워커 블랙도 사오고, 배달의 민족으로 연어회도 시키고. 한가지 안타까웠던 건 9월 초에 들어서서인지 망고가 나오지 않았다는 거다. 망고를 꼭 올리고 싶었는데.
망고는 할머니와 나와의 코드같은 거다. 한번도 코드였던 적은 없지만, 아마 내가 망고!하면 저승에서 할머니가 망고! 할 거라고 상상한다. 잘 익어 잇몸으로도 먹을 수 있고, 시지도 않고, 단맛이 쫙 베어나오는 망고라는 과일을 할머니가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이후에 엄마는 종종 할머니에게 망고를 사드렸다. 엄마랑 내가 외갓집에 놀러가면 할머니가 망고 이야기를 했고, 그럼 우리는 로켓배송으로 망고를 시켜 다음날 아침 할머니에게 망고를 선물했는데 매번 처음처럼 놀라고 좋아하는 모습이 기뻤다.
망고는 내가 할머니와 함께한 30여년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유일한 선물이기도 하다. 태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오는 특특특급 망고 공동구매에 올라타서 할머니 집으로 망고를 한 상자 보냈다. 할머니는 '큰 손주'도 아닌 내가 망고를 보냈다는 사실이 놀랍고 믿겨지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하며 망고 10개를 혼자서만 먹었다. 할아버지도, 삼춘도 주지 않고서. 나는 그만큼이나 할머니에게 살갑거나 잘하는 손주가 아니었다. 살다보니 소민이가 선물을 할 때가 있다는 뼈가 있는 말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너무 보람차서 왜 진작 안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보낼게요! 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느즈막히 철이 들어 할머니랑 대화한게 몇번 되지 않는데, 외손녀중 유일하게 30대였던 나랑 할머니는 파격적인 대화를 나누곤 했다. 예를 들어서 인생을 즐기기 위한 적절한 결혼 횟수나 노년의 연애에 대해서. 엄마가 볼일을 보러 부엌에 가거나 하면, 할머니가 슬쩍 핸드폰을 열어 남자친구에게 온 문자메세지를 보여주는 식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무릎이 아프고, 침이 나오지 않는 병에 걸려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의 관심에 가슴이 뛰는 존재라는게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아프고 병드는 것도 그리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계속 되니까. 나는 나의 외할머니였던 박운자 여사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은 유일한 존재이고, 그래서 우리에겐 코드가 필요하다. 그 코드는 망고인거다.
그래서 내년에 시작하는 나의 사업도 브랜드명에 망고가 들어간다. 망고를 가지고 어떤 이름을 만들지는 여전히 다양하게 논의중이지만, 내가 준비하고 있는 서비스가 세상의 모든 할머니에게 시지 않고, 이가 없어도 먹을 수 있고, 극강의 단맛을 선사하는 최고급 망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민한다. 노인이 아닌 입장에서 노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노인을 대상화하고, 노인을 약자로 취급하고, 노인이 원치않는 친절과 배려를 노인에게 강요한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하기가 겁이 난다. 내가 그런 짓을 할까봐. 할머니에게 더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게 아쉬워서 만드는 서비스인데, 그 서비스가 다시 다른 할머니들을 슬프게 하거나 비참하게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적는다. 꼭 할머니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서비스가 되고 싶다고. 방법은 모르지만, 무조건 그렇게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