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끝이 아닌 시작에 관한 이야기

by 초래
OVERALL


죽음에 관한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겪은 아빠의 죽음 이후 삶의 가장 큰 키워드가 된 애도의 자격, 애도의 방식에 대해 생각을 이어가며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고민하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어제도 친구와 식사를 하며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오늘도 친구와 통화를 하며 "당장의 앞날도 모르겠는데 정말 90년정도 더 살아야된다고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인지 친구와 함께 있는 듯 술술 읽어내릴 수 있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기자신에게 향하는 질문을 만나고 대답하는 것이 그 중 하나라면 이 책은 정말 끝없는 질문을 적절한 속도로 던진다.

이 책은 작가가 직접 연 도서증정이벤트에 참여해서 받게 되었다.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아무도 모르게 직접 사서 스르륵 읽고 후기를 남길 수도 있었지만 왜인지 한번 걸리적거리고 싶었다. 애도하지 않은 딸로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이 책이 등장한 것이 나에게 작은 사건이었다는 것을 굳이 작가에게 밝히고 싶었다. 책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정말 읽고 싶었지만 꼭 읽어야한다는 부담이 없이는 아빠의 죽음을 덮어둔 것처럼 이 책도 끝까지 읽어보지 않을거란 생각도 했다. 나는 사과집 작가와 약 2달 좀 안되는 시간동안 매주 이야기나누는 한 모임에서 만났다. 나는 별 준비와 부담없이 참여해서 헛소리만 늘어놓고 화상카메라를 끄는 사람인데 사과집작가가 발표하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이야기가 끝나고 하나씩 건네는 질문들이 참 촘촘하고 한마디 한마디를 고른 말이라 내가 부끄러워진적이 많았다. 그런 눈빛, 그렇게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읽히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진다.


이 책을 추천하나요?


애도하지 않다- 라는 책 제목이 무색하게 이 글은 자기의 방식대로 죽음을 쫓아가며 누군가의 삶을 계속 사랑한다. 사랑이란 말 말고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과 흩어진 말들과 다음을 살아내는 태도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두려움은 버리고 어서 읽어보길 바란다. 누군가의 특별한 사건이 보편적인 질문이 되어 내 삶을 조명하게 한다. 흥미가 생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제목은 기억해놓길 바란다. 언제고 당신에게 삶에 관한 질문이 필요해질 때 이 책을 열어보게 될거니까.



밑줄들


아빠가 죽고 나서 우리 가족은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가난해도 구질구질하지 않기 위해, 가족의 수명을 더 늘리기 위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규칙적이고 건강한 의식주 생활을 고민하고 있다. - 중략 -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가 죽은 다음 날에 누군가 죽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앞날의 계획들을 세우게 된다고 했다. 일종의 '미래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라고. 나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p.89

정희 언니는 언제나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가벼운 질의응답과 근황을 여러 번에 나누어 주고받는 대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본인의 근황과 목적, 안부와 기승전결을 하나의 메세지에 몰아넣은 빽빽한 문자였다. - 중략 - 삶은 자주 숙제처럼 밀려들어, 버겁게 인사가 쌓인 사람들은 생각할 뜸의 시간이 필수적이었다. 정희언니와 나는 뜸의 시간이 자주 필요한 타입이었다. 한번의 전화에 무너지지 않도록. p.102

단지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이 된 사람에게 내 쪽방과 빚, 쓸쓸한 삶이 밝혀지는 것은 그들에겐 고독사보다 더 외로운 일이다. 어떤 이의 삶은 아름답게 포장되어 기록되지만, 누군가는 제 죽음에서마저 배제당한다. p.162

그러니 내가 바라는 것은 유머러스한 태도의 삶이다. 삶의 패러독스를 감지하는 예민한 감각,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각, 지옥같은 세상에서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는 삶에 대한 애정,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지 않겠다는 다짐, 같이 웃고 떠드는 연대, 가볍게 모일지라도 누구보다 삶을 진지하게 숙고하는 태도. p.180

그러니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아빠의 끝'이 아닌 '나의 시작'에 관한 책이다.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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