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산계단 벚꽃아래 숨겨진 이야기

ㅡ서거정의 낭만과 박중양의 친일행각

by 민들레

지난 3월, 모임에서 알게 된 전북 익산 사는 지인이 대구 침산 벚꽃계단에 앉아 인생샷을 찍고 싶다고 했다. 침산 벚꽃계단은 금시초문이라 퍼떡 검색해 보니, 아뿔싸 몇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벚꽃 핫플레이스였다. 지인과 서로 날짜가 안 맞아서 나는 남편과 4월 첫 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후, 꽃비가 날릴 때쯤 침산계단에 올라갔다.

침산(砧山), 신천과 금호강이 맞닿아 흰모래사장에 다듬잇돌이 많아 침산으로 불렸다. 낮은 산봉우리 5개가 있다고 일명 '오봉산'이란다. 침산이 오봉산인 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대구토박이로서 60 평생 그 곳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중학교 다닐 때 침산동 사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곳을 '박작대기산'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동기 중에 그 집 손녀가 있다는 말도 여전히 내 기억에 있다. 일제강점기 이토 히로부미 양자로 친일행각을 벌인 박중양 소유산으로 흰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오른다고 일명 '박작대기산'으로 불렸다. 2007년 국가환수 돼 지금의 침산공원으로 시민 품에 돌아왔다.

양옆 벚꽃이 맞닿아 절경을 이루는 돌계단을 올라가니 침산정이 있고, 그 뒤로 멀리 신천이 보인다. 조선시대 문인 서거정선생이 침산정에 올라서 금호강을 바라보며 저녁노을을 노래한 대구10영의 '침산만조(砧山晩照)'가 푯말에 적혀 있다. 유유히 흐르는 신천을 보면서 저 물길 돌면 금호강이 맞닿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구도심에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들, 그리고 신천 양쪽을 따라 도심외곽 도로에 차량이 꼬리를 물고 있다.

토종대구 사람이면서 동촌유원지와 수성못, 두류공원의 벚꽃나들이만 했을 뿐 침산계단은 평생 처음 방문이었다. 외지인이 벚꽃 핫플레이스로 얘기하지 않았다면, 집에서 불과 15km 채 되지 않는 도심 속 그곳을 살아생전에 갈 생각이나 했을까? 서거정의 낭만과 친일 박중양의 배신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그곳, 도심 속 우리 역사가 담긴 곳이다.

이제라도 내가 사는 곳을 하나씩 알아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중동전쟁 여파로 유류할증료 폭탄 시기에 내 고장 내 나라 관광을 해 볼까 싶다. '자세히 보면 알게 되고, 알면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나태주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른다.

(2026.4.17 류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