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경주 겹벚꽃
3월말 때아닌 초여름 같은 날씨 탓에 봄꽃들이 한꺼번에 다 피었다. 목련, 개나리, 산수유가 피는가 싶더니 거기다가 벚꽃까지 가세해 봄의 향연이었다. 수성못 근처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주말에 상춘객으로 북새통이었다. 활짝 핀 그 자태를 시샘한 듯, 이틀 격일로 여름 장맛비같이 비가 퍼부어 대더니 꽃잎이 죄다 떨어져 버렸다. 속절없이 빨리 피고 진 벚꽃들.
지난주 벚나무 가로수길을 운전하다 보면 괜히 속상했다. 꽃은 지고 이제 초록잎이 고개를 내밀었다. 구한말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의 ‘3일천하’를 빗대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무너진 짧은 권세처럼, 반짝 화려하게 피려고 긴 겨울 그 추위를 견뎌 냈나?’ 동촌둑길에 활짝 핀 벚꽃구경도 제대로 못했는데, 비를 맞아 견뎌내지도 못하고 꽃잎이 죄다 떨어져 버렸으니 몹시 아쉬웠다.
벚꽃의 꽃말은 '순결'이다. 바람 불면 눈꽃광경을 우리에게 선물해서 순결인가. 꽃말과 달리 '사쿠라'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우리에게 벚꽃은 '변절자'의 이미지가 있다. '사쿠라니쿠'는 말고기다. 겉이 연분홍이라서 보기엔 소고기 같았는데 먹어보니 말고기라는 뜻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쿠라'로 줄여서 쓰는데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으로 60~70년대 정치권에서 많이 쓰였다.
벚꽃, 외부영향으로 속절없이 퍼뜩 져버린 변절자 같다고나 할까. 나는 아직 너를 더 즐기며 보고 싶은데, 너는 비바람에 한없이 약해서 꽃잎을 떨어뜨려 버렸다. 대신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겠노라, 가을엔 알록달록 단풍길을 약속하지만 흐드러지게 하얀 눈꽃송이로 나를 맞은 너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내 머리 위로 꽃비를 날리면서 떠나버린 “너는 나에게 사쿠라다. 또 1년을 기다리라고!"
나의 원망이 크자, 너는 나를 위해 화려한 겹벚꽃이라는 사촌을 보냈다. 꽃잎이 겹겹이 쌓여 너보다 더 풍성하고 몽글몽글해 곧 가지가 부러질 듯 달려 있는 그 애를 보러 경주 선덕여왕길을 걸었다. 너보다 더 짙고 더 붉은빛이 도는 겹벚꽃, 이 녀석도 성질이 급한지 잎과 꽃이 같이 피어있다. 아무튼 이 봄 ‘벚꽃엔딩’은 끝나지 않은 채 계속 우리 곁에 머물고 있나 보다.
(202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