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삶과 여행, 새로운 떠남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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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날의 나는 떠났다. 이는 비단 여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갓 스무 살 타이틀을 달았을 때에는 일평생을 산 고향 집을 떠나 서울이라는 커다란 회색 숲에 나의 둔턱을 하나 얻었다. 그 빙 둘러 벽을 쌓은 얕은 나의 둔턱 아래서 나는 '생활하는 이방인'이 되었다. 많은 날 울었고 많은 밤 전화기를 들었고 많은 낮 웃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의 낯섦이 익숙함이 되고 그 익숙함이 지겨움이 될 무렵 나는 또다시 떠났다. 대학생이라면 으레 한 번씩은 도전한다는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여행의 정취는 나를 물들였고 그 거세지 않은 옅은 봄바람은 나의 마음속에 들어와 남았다. 그는 이따금 내 머리로 올라가 나를 간질였다. 때때로 지치고 힘든 날이면 나는 그 간지러움을 다시금 되감아 보았고 나의 마음은 몽글몽글한 덩어리가 되어 가라앉곤 했다.
그 간지러움이 너무도 거세게 나를 괴롭혀 마음이 아파질 즈음이었다. 나는 또 한 번의 떠남을 만들어 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나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낯선 땅 호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호주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저 캥거루가 뛰노는 남반구의 나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전혀 기대치 않던 그곳으로의 떠남은 나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조금은 다른 음식들을 먹었고 다른 음악들을 들었으며 새로운 생각들로 머릿속을 채웠다.
아,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일 년뿐. 나는 그렇게 정든 이국을 떠났다. 그 떠나던 날 나는 셀 수 없이 여러 번 눈물을 흘렸었다. 떠나는 비행기에서 두 시간 간격으로 눈물을 흘렸었다. 도무지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처럼 보였고 그렇게 축축한 일 년이 지나 오늘이 되었다.
마지막의 떠남에서 나는 내가 또다시 눈물 흘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돌이켜 스무 살의 나에게 떠남은 아주 커다란 것이었다. 정든 첫 번째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던 날이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와 애틋한 사이가 된 후였다. 나는 그 인연의 무게에 눈물 흘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들에 눈물 흘렸다.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이라 두려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첫 번째의 감정은 무뎌져 갔고 나는 깨달았다. 인연이라는 것은 억지로 붙잡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오래 두고 이어질 그것들은 애써 마음 쓰지 않아도 티 없이 지속되리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두고 온 인연에 흘릴 눈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만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고 우리는 함께일 수 있음에. 그러나 호주에서의 떠남은 무뎌졌던 나를 다시 한번 스무 살의 꼬마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나는 남은 눈물을 흘렸고 그에 감사했다. 또다시 눈물 흘릴 수 있는 인연을 만들었음에 감사했다.
최갑수 시인이 말했다. 외로운 사람, '외로운 사람'이기에 당신은 여행을 앓는 것이라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오늘의 나와 오늘의 내가 있는 장소에서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건만 그 사실을 좀처럼 견딜 수가 없어 외롭지 않기를 꿈꾸며 나는 떠나왔었다. 그것이 나의 떠남의 이유였다.
그렇게 많은 날을 떠나서 언젠가는 더 이상 떠나지 않게 되기를, 누군가 나를 꽉 잡아 매어 떠날 수 없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이제 또 한 번의 떠남을 준비한다. 마냥 신나기보다는 두렵다. 이 떠남의 뒤에 또다시 아픈 떠남이 있을 것인지, 앞으로 얼마나 더 떠나야 더 이상 떠나지 않을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러나 이 두려운 떠남의 앞길에 포근하게 쌓여 나를 안아 덮어줄,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의 떠남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