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어느 용기 없는 자의 고백.
어쩌면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풋내기인 내가 이런 글을 적는 것이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도 나와 같은 시절이 있었을 테니. .
가 있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특히나 나처럼 학창 시절 오래도록 꿈꾸어 애틋하던 전공 과정이 막상 대학에 들어와 품 안에 안으니 버둥거리다 못해 나를 밀쳐내고 뺨을 때린 경우에는 말이다. 표현이 조금 과했나? 어쩌면 모두 나의 핑계일지도, 어쩌면 열심히 하지 않은 자의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르는 이런 생각은 이제 그 8학기째에 놓여있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가끔의 나는 떨리는 두 손을 꽉 쥐어 진정시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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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사학년 전공 수업의 맨 앞자리에 앉아 있다. 교수님의 모든 눈짓과 손짓 하나하나를 뚫어질 듯 응시한다. 손에 들린 값비싼 일제 볼펜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어낸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연극에 불과하다. 아니 나는 연극에 진심을 다해 임한다. 몰입을 위해 앞서 명상하고 완벽한 분장을 위해 시간을 들인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 전 새로 받아 든 연극 대본은, 아뿔싸 히브리어로 되어있다. 쨍한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내비치고 수백 개의 눈이 나를 꿰뚫을 때의 나는, 머릿속이 아득해짐을 느낀다.
이것이 맞지 않는 전공으로 졸업의 문턱에 올라선 초라한 사학년의 심정이다.
혹여 '노력이나 해보고 그런 소릴 하지'라거나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공부해본 적이나 있고 말해'라는 혀를 끌끌 차는 비난이 내게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지금 하는 일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보다 한 번쯤 '그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해볼 의지조차 없다'는 것에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내가 나름대로 공부에 흥미를 붙였던 것은. 요즈음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나의 학교 시험은 그다지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고 약간의 뛰어놈을 포기하고 얼마 되지 않는 시험 범위를 달달 외워낸다면 백점 구십 점을 맞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험 뒤에 받는 칭찬이나 선물 등의 포상은 어린 내게 너무도 달콤하게 다가왔다.
중학교 시절의 나 역시 공부만 하는 아이였다. 그렇다고 친구가 전혀 없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한 분야에 특출 나기 보단 두루뭉술 아울러 그냥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눈에 띄기 보단 무색무취의 아이였던 내가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던 한 가지였다. 이전과 같이 노력 뒤에 다가오는 칭찬 스티커는 번쩍 빛이 났고 나의 가슴팍에는 빼곡히 그것들이 붙여져 갔다. 그렇게 나는 졸업식 때 강당의 교단에 올라설 만큼 스티커를 많이 가진 아이였다.
그 아마도 별 모양이던 스티커들이 모여 나를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주기를 바랐나 보다. 아니 당연한 수순으로 그런 보상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어린 마음이었다. 특출 나게 한 가지를 잘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름 높은 특목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그 아래의 특수한 진학의 가지들은 여러 가지 상황들에 의해 잘려 나갔다. 그 시절의 담임 선생님은 내 눈을 바라보며 추첨제인 일반 고등학교 배정이 나에겐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무언의 암시를 보냈다. 아, 그 얼마나 무책임한 그것이었는가.
그랬다. 나의 스티커들에는 그다지 힘이 없었다. 그것들을 떼어낸 후에 끈적끈적한 자국들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전 도시에서 모두가 희망하지 않는 산 속의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고 물론 고등학교 생활은 유쾌했지만, 다른 많은 아이들에 비하면 이는 불평할 것도 없었건만, 더 이상 스티커를 모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한때 반짝이던 그것들도 결국에는 끈끈한 검은 자국들로 남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독한 아이는 아니었다.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그저 보통의 아이였다. 다만 가슴에 스티커 자국을 남긴 아이였을 뿐이다.
그렇게 12년을 넘어 '수능'이라는 것이 다가왔다. 아마도 나의 노력의 부재였을 것이다. 또한 운의 부재였을 것이다. 그렇게 운이 좋지 못한 아이였던 나는 그 초겨울의 목요일 늘 발목을 잡던 '수학'이라는 놈을 밟아 쭉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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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다지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나의 시간들은 나를 '한 번쯤 온 힘을 다해 노력해볼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작은 내 가슴에 반짝이는 별 모양 스티커가 가득 채워지고 나면, 나도 그와 같은 별이 되리라 믿었던 어린 날의 나는 없었다. 혹여 초라한 나의 성이 무너질까 지금 가진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쉽사리 놓을 수 없는, 그래서 새로운 반짝이는 것들을 쫓기에는 몸이 무거운 무늬만 어른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다 내팽개치기에는 가슴에 남은 스티커 자국들과 같이 질척거렸고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걱정만 앞서 주춤거리는 겁쟁이가 되었다. 머리로는 아는 일들을 나는 선뜻 해내지 못했다. 그저 가끔의 나는 떨리는 두 손을 꽉 쥐어 진정시키곤 할 뿐이었다.
얼마 전부터 TV에서 보이지 않는 맹기용 쉐프가 이러한 말을 했다. 가끔 남들이 생각해 번듯한 직장을 가진 자신의 친구들이 맹쉐프를 걱정한다고 했다. 그의 어쩌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한 마디씩 던져보곤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나는 대학 등 사회적으로 큰 일들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요리를 좋아한다고.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할 만큼 좋아하는 것을 찾은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때로는 불안한 날이 있을지라도 이 말을 하는 순간만큼에는 자신에 차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늘과 같은 날이면 나는 공허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곱씹어 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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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운도 용기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바로 나도 알 수 없다는 것. 일단은 기다려 보는 것. 일단은 생각해 보는 것. 그저 끊임없이 '나'를 알아가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온전한 나를 밝혀낼 것'을 믿는 것. 그 빛을 기다려보는 것. 그리고
반대로 내일에 대한 불안이 오늘을 좀먹지 않게 하는 것. 흐릿하지만 멀리서 보면 선명한 하루를 채워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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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 글을 읽고 '내'가 있으니 혼자가 아님에 조금은 힘을 내기를 바란다. 아니 힘을 내는 건 힘든 일이니 가만한 위로를 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