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sorim May 19. 2016

안녕, 고마웠어.

_멜버른, 빙 둘러선 고백.



_어쩌면 외국에 산다는 것에 대한. 멜버른에 산다는 것에 대한. 그저 나에 대한 빙 둘러선 고백.



안녕, 아슬라.


왜인지 너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나의 멜버른의 아주 크나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너임에 틀림이 없는데 말이야. 이름을 그냥 공개해버리는 것에 유감스러워하지 않기를 바라. 너의 나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생소한 이름이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 어느 하나라도 너와 직접 만날 일은 없을 거란 강한 믿음이 있기에. 너의 이름을 그대로 적어 넣는다. 물론 독특한 너의 이름을 내가 꽤나 마음에 들어하기 때문이기도 해.


분명 너에 대해 할 말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왜인지 정리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이렇게 전해지지 않을 편지를 적어. 어차피 전해진다 하더라도 너는 한글을 읽을 수 없겠지만.



너에 대해 생각나는 첫 번째는 바로 그 이름이야. 너의 이름은 매우 독특했어. 나는 너의 이름을 한 번 듣고는 기억할 수가 없었지. 몇 번이고 되물었고 여전히도 발음할 수 없는 너의 성까지 합친 풀 네임은 외계어와도 같이 들렸어. 물론 나의 이름도 만만치 않았지만. 사람들은 내 이름을 몇 번씩 되묻곤 했어. 너와 내가 마주했던 호주에서는 영어를 쓰잖아. 제대로 된 내 이름의 발음은 너무도 까다로워서 한국어가 아니면 좀처럼 소리 내기가 허락되지 않았고, 영어로 올바르게 표기하거나 발음해낼 수 없었어. 덕분에 나의 오랜 별명이자 내 이름의 간단한 변형 버전인 닉네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억하기 쉽지는 못했지.


생활하는 데 이름 그까짓 거 별로 안 쓰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호주에서는 내 이름이 자주 불리곤 했어. 하다못해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더라도 훤칠한 바리스타 언니 오빠들이 내 이름을 묻곤 했지. 나에게 관심이 있다거나 해서가 아니야. 그저 구분하기 위해 테이크아웃 컵에 적어 넣을 '이름'이 필요했던 거지. 단 한 명도 내 이름을 한 번에 받아 적어 낸 사람이 없었어. 난 기계적으로 스펠링을 불러대었지. 그러다 어쩔 때는 친구의 이름을 대기도 했고 알게 뭐야 하며 아무 영어 이름이나 던져놓기도 했지. 앨리라거나 썸머라거나 헤일리라거나 하는.



그런 불편함에 대해 너에게 쫑알거렸던 날이었을 거야. 너는 눈을 힘 있게 뜨며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눈빛을 나에게 보냈어. 너의 큰 눈 안의 진한 갈색 눈동자는 내게 말했지. '이름을 강요해. 몇 번이고 다시 알려줘. 계속 말하게 하고 되풀이하게 해. 그럼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기억할 거야.' 나와는 조금 다른 관점이었어. 그래, 나는 언제나 너무 의기소침하달까. 좋게 말하면 지나치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었어. 한 마디로 소심쟁이란 뜻이지. 너의 말이 맞았어. 남들이 뭐라건 간에 발음할 수 있든 없든 간에 몇 번이고 다시 말해야 되든 간에. 그건 '나의 이름'이었고 그 이름을 쓰는 건 '나'였고 그 모든 사람들을 대면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 중요했어.


이름 강요의 좋은 점이 있어. 덕분에 사람들이 내 진짜 이름과 비슷하게 나마 나를 기억한다는 거야. 그리고 네가 알려준 또 다른 아주 큰 장점이 있지, 독특한 이름을 가진 것에 대한. '바로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너는 말했어, 독특한 너의 이름은 아주 편리해서 그저 무신경하게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야. 어차피 그들도 너와 나의 이름을 까먹었을 테니까! 나는 한바탕 웃었고 그것이 크나큰 진리임을 깨달았어. 그래 피차일반으로 나도 삼세번은 누군가의 이름을 되물어도 괜찮은 거야. 언짢아한다면 나는 되묻겠지, '너는 내 이름을 기억하니?'


내 이름은 사실 앨리가 아니었어. 'Ellie'는 더더욱 아니야. @Market Lane Coffee


너는 유일하게 날 '가르친' 사람이었어. 때론 뜨끔하기도 했지만. 너는 내게 '무언가'를 주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소심쟁이야. 그렇다고 또 사회에 부적응할 정도는 아니고 이제는 낯이 좀 두꺼워진 덕에 할 말은 할 정도랄까. 호주에서는 아마 더 심했던 것 같아. 실은 아주 수다쟁이인 내가 나름은 과묵한 사람으로 기억될 가능성도 있어. 나는 실수가 두려웠다. 새로운 언어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이었다면 조금 나았을지 모르겠지만, '영어'는 새 친구는 아니었어.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다들 기본적으로 십 년씩은 공부하는 거 아냐? 나의 실력을 소위 '털리기' 싫었어. 제일로 두려웠던 건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지. 일단 시작하고 나서 몇 번의 연이은 말들이 왔다 간 후였어. 언제 갑자기 날아올지 모를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버벅거림이 대화 자체를 얼어붙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어. 뭐 몸무게가 몇 키로야 따위의 질문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냥 머리로는 아는데 그걸 입 밖으로 어떻게 내뱉어야 할지 몰라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는 거야. 한국어를 너무 사랑하는 내 머리가 빠르게 영작문을 해내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질문. 그래서 나는 자주 아예 입을 닫아버리곤 했어. 너에게 난 말없이 잘 웃는 사람이었을까?



아마도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야. 어쩌면 너도 처음 호주에 온 것이 열 살 무렵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의 기분을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르지. 너와 내가 일하던 카페에서 누군가 커피를 주문하면 우린 직접 일일이 오려낸 조그마한 종이띠에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어, 주문한 커피나 차의 이름과 함께. 그리고 그 종이 띠가 오래된 커피 머신 앞에 주루룩 줄 세워지곤 했지. 나와 같이 서빙하는 사람은 음료가 만들어지면 그 메뉴와 이름을 커다랗게 외쳐야 했어. '쏘이 라테 포 케이티?'와 같이 말이야. 케이티가 두 명이나 와서 둘 다 똑같이 소이 라떼를 주문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우리의 카페는 자그마했고 그렇게 일일이 이름을 불러 메뉴를 전달했어. 뭐 가끔은 카운터의 동료가 '저기 왼쪽의 금발머리'라거나 하는 힌트를 주기도 했지만.


아마 '젠을 위한 차이 라테'와 같은 주문이었을 거야. 나는 어느 직원이 어떤 중고 가게에서 사 왔을 법한 갈색 무늬가 있는 요란한 찻잔과 그와 세트인 컵받침 그리고 사뿐히 올려진 작은 티스푼을 오른손에 함께 들고 힘없이 '젠을 위한 차이 라테'를 외쳤어. 아마 아무도 못 들었을 거야. 난 그다지 크게 외치지 못했거든. 늘상. 아마 라테의 발음이 라떼인지 라테인지 혹은 라떼와 라테 사이인지 확신이 없어서 그랬을 지도 몰라. 아니면 그저 늘상 괜히 한 발짝 주눅 들어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나 빼고 늘 호주인들이었거든.


내 뒤에서 나 대신 크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어. 바로 너였지. 바로 그날 일을 마친 뒤였을 거야. '나 먼저 집에 갈게'라는 말을 하고 먼저 퇴근하려던 참이었어. 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우렁차고 걸걸한 목소리로 떠들고 있던 다른 두 동료들은 나의 인사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신나는 이야기를 이어갔어.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고 있었지. 그냥 그랬어. 그런 즐거운 대화를 끊어낼 자신이 없었던 거야. 나의 이야기로 끊어져 비워져 버린 그 빈자리를, 그에 상응하는 활기참으로 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내 앞에서 내게 '무언가'를 전해준 목소리가 있었어. 바로 너였지. 너는 말했다, '너는 네 목소리를 내야 해.' 아무도 듣지 못할 것이라 말했어. 작게가 아니라 크게 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어. 영어에도 분명 중의적인 표현이 있을 거야. 너의 그 커다란 진갈색 눈동자가 또다시 나의 눈을 힘 있게 바라보았을 때, 나는 그 목소리를 뜻하는 '보이스'라는 말이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소리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았어. 마치 너는 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지.


나는 나의 목소리를 내야 했어. 나는 나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했어.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분명히 해야 했어.


물론 그 외에도 네가 알려준 것들은 많았지. 아주 끝내주는 분위기의 카페라거나,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chicken'이라고 부른다거나,
그리고 제일 맛있는 에일 맥주는 'Little Creatures'라는 것과(나도 전적으로 동의해!) 요즘 유행하는 건강 식품은 코코넛인데 작년엔 고지베리였다는 것 따위들.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물론 직접 구구절절 전하지는 못할 거야. 너는 나의 기억력이 매우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겠지. 그렇지만 이렇게 찌질할 정도로 사소한 것들까지 기억하는 줄은 모를 거야. 징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그러나 네가 나에게 주었던 '무언가'들에 너무 고마웠다는 말은 하고 싶어. 해외 생활은 그랬어. 아니 어쩌면 모든 새로 시작하는 생활은 그럴 거야. 언어 장벽이든 뭐든 간에 약간의 다름으로 인해 내가 틀리지는 않을까. 그 속에 나의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어쩔까.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모두의 눈총을 받으면 어쩔까. 다시 되돌리지 못할 좋은 분위기를 내가 깨버리지는 않을까. 그렇게 몇 번의 소외감을 맛보고 나면 더 노력해보거나 다 포기해 버리거나 둘 중 하나야. 깊이 뛰어들 수단을 더 연구해보거나(내 경우엔 영어공부겠지), 아니면 그저 불편한 새로움을 대면할 기회를 싹둑 잘라내 버리거나.



덕분에 나는 우리의 카페에서 너와 계속해서 일할 수 있었어. 분명했던 너의 가르침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여전히 나는 다소 소심쟁이야. 그러나 이제는 나와 나의 이름과 나의 목소리에 좀 더 분명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아마도 그럴 거야. 두 번째이기도 하고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어서 그만큼 더 뻔뻔해졌기도 하고. 우습다, 우리가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이. 어쩌다 보니 나는 다시 돌아간다. 아마 넌 놀라지도 않을 거야, 그렇지? 고맙다는 말을 정말로 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 그러나 너의 그 알록달록한 하와이안 셔츠와 늘상 입던 체크무늬 반바지 혹은 헐렁한 면바지, 발목까지 올라오는 앞코가 까진 워커와 커다란 갈색 가죽 가방이 그립다.


고마웠어. 곧 만나자.




p.s. 사실 이 말고도 할 말이 너무도 많구나. 그런데 너무 줄줄이 이어질까 더 이상 덧붙일 수는 없겠어. 아, 한 가지 더. 나의 호주를 특별하다고 표현해줘서 고마웠어! 나는 언제나 나의 호주가 특별하기를 바랐어. 나아가 내가 나의 호주 안에서 특별하기를 바랐어. 아마 너에게 내가 특별하기를 바랐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런 네가 그 특별함에 대한 한마디를 건네주어서 고마웠어. 내릴 정거장을 지나쳐 급하게 뛰어내렸던 텅 빈 놀이터 근처를 걷던 늦은 밤이었지 아마. 안녕. 잘 지내. Sssorim x


네가 아주 훌륭한 셰프였다는 것을 빼먹을 뻔 했구나. 괜찮은 커피메이커와 최고의 핫초콜릿 메이커라는 것도!






매거진의 이전글 멜버른의 잔재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