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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왕과 사는 남자>가 오늘 누적관객수 800만 명을 넘겼다. 지금 기세라면, 무난하게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유독 부진했던 한국영화가 모처럼 활기를 맞았다.
천만 영화는 한 가지 이유로 탄생하지 않는다. 대진운도 좋아야 하고, 스타도 출연해야 한다. 연출과 연기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 당시 관객들이 가장 원하는 포인트를 대중적인 화법으로 풀어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단순성'이라는 미학이 있다. 단순성을 깊이가 없다거나 수준이 낮은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영화는 놀랄 만큼 단순한 것"이라고 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영화들은 대부분 '아주 적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 주인공의 시점숏으로 포착된 햇빛에 비친 낙엽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도 단순함의 미학을 갖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과학은 매우 복잡하지만, 영화 자체는 실로 단순하다. '살고 싶다'는 생의 의지와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랑의 의지. 그 단순성의 이미지가 이 영화에 있다.
하스미는 "단순함이 갑작스레 내비치는 뜻밖의 표정이야말로 영화의 풍요로움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의 그 단순성에 모종의 스파크가 일어날 때, 우리는 영화의 풍요로움에 감동을 받고 극장을 나선다.
<왕과 사는 남자>도 단순한 영화다. 이 영화에는 밥상의 온기가 있고, 삶과 사람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두터운 우정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관계가 있다. 그러한 요소들이 진심으로 관객들의 마음에 전달된 것이다.
특히 단종을 연기한 배우 박지훈의 표정은 이 영화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그의 표정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무언가를 통과한 뒤에 도달한 느낌'으로서의 단순성.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 상태를 표상하는 얼굴로서의 단순성. 가장 단순한 것일수록 가장 멀리, 깊게 닿는다는 원칙으로서의 단순성. 그의 표정에는 이러한 단순성들이 있다.
물론 단순성이 영화나 연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요리사 에드워드 리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책을 읽다가 "좋은 요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반드시 간편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단순하다. 내가 수년간 지켜오고 있는 진리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하스미가 역설한 단순성과 궤를 같이 한다.
독일의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도 "장식을 제거해야 구조가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단순성은 예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주절주절 생각나는 대로 적었는데, 이 단상들을 좀 정리해서 칼럼으로 써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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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관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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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장기인 액션이 돋보이는 영화다. 다만 후반부의 몇 가지 장면은 조금 촌스러웠다. 어떤 설정은 윤리적으로 불필요하기도 했다. <베테랑2>의 단점이 불현듯 생각났다. <부당거래>와 <모가디슈>의 절제와 긴장감이 참 좋았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아쉬운 영화다.
이종필 감독의 <파반느>는 "외모지상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구호만 있다. 구호만 있고 실천이 없는 영화는 표류하기 마련이다.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넘버원>은 연기와 연출 모두 조악한 영화다. 진심만 있고 형식이 와해된 영화는 공감받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