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170422_024002288.jpg




S는 영화 이론을 전공하고 있어. 심지어 대학원에서. 영화 이론이라는 걸 학부도 아닌 대학원에서 전공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아? 안갯속에서 또 다른 안개를 찾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정도는 아닐 거야. 친구들이 간혹 "넌 취미를 뭐 그렇게 큰돈 들여가며 고급스럽게 하냐"라고 비아냥 거리는데 아주 짜증 나 죽겠대. 그리고 얘가 논문을 쓰려면 감독 하나를 박살 내야 되는데 그 감독이 찍은 영화를 편당 최소 50번 이상 봐야 된다네. 근데 그 감독이 영화를 한 편만 찍었겠어? 아 참, 그리고 얘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알아? "영화 좀 추천해줘."


T는 어렵게 대기업에 입사를 했어. 직장 다니기 전에는 얘가 책도 보고, 영어 공부도 하고 이것저것 자기 계발이라는 걸 했었는데 취업하고 나서는 아주 그냥 맛이 갔어. 쉬는 날에는 뭐하는지 알아? 아프리카 TV를 본다네. 뭐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배움에 욕심이 있던 애가 취직을 하더니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삶의 이유를 외면하고 사는 거지. 그리고 대화의 절반이 한숨이고 나머지가 욕이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 "돈 주고 뭐라도 좀 배워라. 월급 그거 다 어디에 쓸거니"라고 충고했는데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일하면서 배우긴 뭘 배워. 아 참, 그리고 얘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알아? "연봉 얼마야?" 그걸 지들이 알아서 뭐할 건데.


A는 소설가야. 책 한 권 낸 적 없는. 그러니까 이걸 소설가라고 말하기도 참 애매해. 근데 소설을 쓰니까 소설가야. 누가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소설가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자기도 좀 민망한가 봐. 그래서 내가 그냥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얘기하라고 했어. 그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라고. 일단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소설 같은 건 쓰지 않으니까. 아무튼 A는 소설을 쓰고 있어. 근데 웃긴 게 얘가 소설을 쓰는데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거의 제로야. 하루는 내가 "넌 왜 소설을 쓰니?"라고 물었는데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얘기하더라. 그 세계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 참, 그리고 얘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알아? "소설가요? 와, 되게 낭만적이다."


그럼 저기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냐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근데 저 사람들이 기어코 이 컴컴한 곳으로 걸어 들어오려고 하는 이유는 알지. 그 이유가 뭐냐고? S나 T나 A처럼 살기 위해서야. 누구는 대학원에서 영화 이론을 전공하고 싶어 할 테고, 누구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쉬는 날에 아프리카 TV를 보고 싶어 하겠지. 또 누구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할 거야. 근데 쟤들이 S나 T나 A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아? 거의 불가능하지. 애초에 그런 의식도, 설령 그런 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용기가 없을 거야.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그래, 뭐 저 중에 몇 명은 될 수도 있겠다.


근데 말이야. 가끔 나도 이 컴컴한 곳으로 들어오기 전이 미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어. 근데 그게 잘 생각이 안 나네. 젠장. 그래서 엄마한테 저 사진을 보여줬어. 근데 엄마는 사진 자체를 이해를 못하는 거야. 밝은 곳, 컴컴한 곳이 구분이 안되나 봐. 내가 황당해서 "그럼 엄마는 지금 어디 있는데?"라고 물었는데 엄마가 하는 말이 "어느 곳도 선택할 수 없는 삶에 있다"는 거야. 나는 그 말을 행복의 양탄자가 없는 삶이라고 이해했어. S나 T나 A는 누가 보더라도 행복의 양탄자를 타고 있잖아? 근데 엄마는 행복은 물론이고 그 흔한 절망이나 고독도 선택할 수 없었어.


나는 저기 걸어 들어오고 있는 애들이 S나 T나 A처럼 행복의 양탄자를 탔으면 좋겠어. 정말이지 진심으로. 행복의 양탄자를 타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해. 예를 들면 친구들이랑 치킨을 시켜먹을 때 "나는 꼭 허브양념 맛을 먹을 거야. 아니면 돈 안 내"라는 뚝심 같은 거. 친구가 "그럼 넌 혼자 따로 시켜먹어"라고 했을 때 그 애의 턱을 두 번 정도 돌릴 수 있는 패기 같은 거. 이런 게 필요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미친놈이 되라는 거야. 미치지 않으면 행복의 양탄자를 탈 수가 없어. 그리고 가능하면, 너희 엄마도 행복의 양탄자를 탈 수 있게 좀 도와주라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나는 행복의 양탄자를 타고 있냐고? 그게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야.






사진 여장천

글 송석주


나홀로 사진전 : https://www.facebook.com/lastnightdiary


매거진의 이전글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