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은 1986년에서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에서 일어난 미해결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을 박진감 있게 풀어낸 것은 물론, 당시의 부조리한 수사 관행과 어두웠던 시대상을 날카롭게 꼬집은 이 영화로 봉 감독은 일약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봉 감독은 이 영화를 선보이고 난 뒤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그만큼 <살인의 추억>은 봉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섬세한 연출’이란 무엇일까요? 거기엔 다양한 방식이 있을 텐데, 화면을 사실적으로, 그야말로 현장감 있게 재현하는 연출이 그중 하나입니다.
화면을 사실적으로 구성한다는 건 화면에 보이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열하는 작업인 ‘미장센(mise en scène)’을 사실적으로 구성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고 현장감 있게 재현한다는 건 되도록 그 사실적인 미장센을 한 호흡으로 밀도 있게 포착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영화감독들은 화면을 사실적으로, 현장감 있게 재현하기 위해 어떤 방식을 사용할까요?
바로 ‘롱 테이크(long take)’입니다. 롱 테이크는 문자 그대로 긴(long) 장면(take)을 말합니다. 롱 테이크는 영화의 장면 구성 방법 중 하나로 장면이 1~2분 이상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카메라를 한 번 작동 시켜 중간에 끊지 않고 1~2분 이상 촬영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살인의 추억>의 유명한 롱 테이크를 살펴보도록 하죠.
봉 감독은 이 롱 테이크로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어수선하고도 서늘한 풍경을 현장감 있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2분 가까이 지속하는 이 롱 테이크에서 관객들은 사실감 있는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과 그들이 종횡무진 움직이는 시골 논두렁의 공간적 이미지에 감탄하며 실제 영화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롱 테이크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의 롱 테이크는 카메라가 움직이는 롱 테이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카메라가 고정된 롱 테이크도 있는데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에서 주인공들이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길을 걷는 모습을 포착한 장면이 고정된 롱 테이크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움직이는 롱 테이크가 현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방점이 찍힌다면, 고정된 롱 테이크는 사실감을 증대시키는 데 방점이 찍힙니다. 관객들은 고정된 롱 테이크를 통해 오랫동안 해당 장면의 시간과 공간을 음미하게 되고, 그 시공간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순간’이라는 회귀 불능의 의미를 뿜어내면서 이미지에 특유의 아련함을 더합니다.
이처럼 롱 테이크는 영화에 사실감과 현장감을 부여하며 마치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특히 예술영화 감독들이 롱 테이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롱 테이크가 허구의 영화를 현실로 치환하는 사실주의적 미학 수단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영화학자 앙드레 바쟁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롱 테이크를 찬양한 바 있습니다. 영화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현하는 예술이라고 믿었던 바쟁은 롱 테이크가 현실을 왜곡 없이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평론가 루이스 자네티 역시 “해설을 줄이고 실제 대상의 겉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 그 나름의 형식미를 가지고 소재를 미화하지 않고, 생생한 모습의 영상을 추구한다”며 롱 테이크 기법을 높이 샀습니다.
어쩌면 롱 테이크는 허구일 수밖에 없는 영화를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만들고자 하는 감독들의 안간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이제 영화를 볼 때, 1분 이상 지속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면 ‘아, 감독이 이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현장감 있게 표현하고 싶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