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도의 중요성’을 아시나요? 셀카를 찍을 때도 어떤 각도로 촬영하느냐에 따라 인상이 확 달라집니다. 일명 ‘얼짱 각도’라고 하죠? 이 말은 국어사전에도 등재돼 있는데 “사진을 찍을 때, 얼굴이 보다 잘생기거나 예쁘게 나오는 각도”를 뜻합니다.
각도는 영화에서도 참 중요합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앵글(angle)’이라고 하는데, 앵글은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의 각도를 의미합니다. 문학에서 문체가 작가의 개성과 의도를 담아낸다면, 영화에선 그 역할을 카메라 앵글이 합니다. 즉 앵글은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자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앵글은 하이 앵글(high angle, 부감)과 로우 앵글(low angle, 앙각)입니다. 문자 그대로 하이 앵글은 피사체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다본 각도이고, 로우 앵글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올려다본 각도입니다.
루이스 자네티는 책 『영화의 이해』에서 “하이 앵글로 촬영한 인물의 영상은 동일 인물을 로우 앵글로 촬영한 영상과 정반대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영화의 내용과 형식이 긴밀히 연관돼 있다는 뜻인데, 같은 인물이라도 어떤 앵글로 포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2008)는 리얼리즘 화법으로 조각된 범죄 영화입니다. 실제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 평단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각각 전직 형사와 연쇄살인마로 분한 김윤석과 하정우의 실감나는 연기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위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 엄중호(김윤석)가 여러 단서들을 통해 지영민(하정우)이 범인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장면입니다. 줄곧 이 사실을 믿지 않았던 엄중호는 무력감과 분노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감독은 이 모습을 하이 앵글로 포착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엄중호는 왜소하고 위축돼 보이며, 어떤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속박된 존재로 비춰집니다.
하이 앵글에선 피사체가 처한 시공간적 상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물보다는 배경이 강조되는 앵글이기 때문인데, ‘밤’이라는 시간적 상황과 ‘비 내리는 길 위’라는 공간적 상황은 하이 앵글과 맞물리며 엄중호의 자기비하, 불안, 억압의 감정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효과를 창출합니다.
다음은 로우 앵글입니다. 로우 앵글은 하이 앵글과는 반대로 피사체를 부각시킴으로써 시공간적 상황보다 인물이 더욱 강조되는 앵글입니다. 로우 앵글은 인물의 동작을 보다 속도감 있게 포착해 혼란감을 증폭시키는데, 전쟁 영화에 사용될 때 특히 효과적입니다.
장훈 감독의 영화 <고지전>(2011)의 한 장면입니다.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휴전협정 막바지, 남과 북이 ‘애록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극렬한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수많은 군사가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모습을 감독은 로우 앵글로 포착했는데, 어떠신가요? 움직임의 속도가 더 빨라 보이시나요?
또한 로우 앵글은 관객에게 화면 속의 피사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면서 위압감과 공포감, 경외심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따라서 선전영화나 영웅주의를 묘사하는 영화에서 자주 쓰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데이빗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를 들 수 있습니다. 로렌스(피터 오툴)라는 영웅을 로우 앵글로 포착하는 이 장면에서 관객은 로렌스의 권위와 위엄, 강인함과 용맹함을 느낍니다. 말하자면 관객은 로우 앵글로 인해 피사체에 의해 짓눌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위 장면의 경우 역광과 함께 사용돼 그 효과는 더욱 증폭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