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영화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을 설명을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언급되는 게 바로 ‘패닝 쇼트’(panning shot)입니다. 패닝 쇼트란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에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수평 이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패닝 쇼트는 가로로 긴 공간을 묘사하거나 수평으로 움직이는 피사체를 포착하는 데 유용하게 쓰입니다. 이때 카메라는 고정된 축을 중심으로 좌우 수평 이동을 하며 드넓은 촬영 현장의 광활함을 표현하고, 움직이는 인물을 스크린 중앙에 위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패닝 쇼트의 가장 쉬운 예는 중심인물과 주변인물의 반응을 포착할 때의 카메라 움직임입니다. 가령 결투 장면에서 카메라를 인물 A와 인물 B 사이에 고정한 후, 인물 A → 인물 B → 구경꾼 순으로 이동시키며 각각의 반응을 담아내는 것이죠.
이 외에도 카메라를 360도로 회전시키는 ‘순환 팬’, 빠른 팬의 이동으로 화면이 순간적으로 희미해지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스위시 팬’ 등이 패닝 쇼트의 한 종류입니다. 스위시 팬의 경우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연결하는 데 종종 사용됩니다.
패닝 쇼트의 가장 유명한 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장도리 신(scene)’입니다. 오대수(최민식)는 자신이 15년 동안 감금됐던 장소에서 일군의 패거리들과 결투를 벌이는데, 이때 카메라는 ‘롱 테이크’(long take, 장면이 1~2분 이상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의 좌우 패닝 쇼트를 활용해 격투 장면을 실감 나게 포착합니다.
사실 ‘장도리 신’에 사용된 패닝 쇼트는 격투 장면의 효과성을 위한 것인데, 소위 ‘일 대 다수’의 격투 장면의 경우, 주인공의 싸움 실력이 지나치게 미화되고 주인공을 해하는 다수의 액션은 다소 엉성하게 재현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이러한 한계를 패닝 쇼트를 활용해 사전에 차단합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패닝 쇼트가 감각적으로 사용된 영화입니다. 마코토는 자신에게 호감을 고백하는 치아키를 자꾸 외면합니다. 마냥 친구라고 생각했던 치아키가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타임 리프’(time leap) 능력이 있는 마코토는 치아키가 자신에게 마음을 표했던 이전의 상황으로 계속 시간을 돌립니다.
치아키의 진심을 자꾸만 외면했던 마코토가, 과거로 시간을 자유롭게 되돌렸던 마코토가 결국 깨닫는 것은 상대의 진심은 외면할 수 없고, 흘러간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에 마코토는 상대의 진심을 마주하기 위해 치아키에게 달려갑니다. 이때 카메라는 달리는 마코토를 패닝 쇼트로 포착합니다. 마코토가 패닝의 스피드를 넘어서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순간은 실로 눈부시고 아름답습니다.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역시 패닝 쇼트가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주인공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가 유산의 아픔 이후, 자신이 보모로 일하는 가정의 아이를 바닷속에서 구해내는 모습을 롱 테이크의 패닝 쇼트로 포착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특히 경탄스럽습니다.
왼쪽으로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의 움직임에 맞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사력을 다해 걸어가는 클레오의 움직임은 좌우 패닝 쇼트와 맞물리며 그야말로 경이로운 영화적 순간을 탄생시킵니다. 이처럼 패닝 쇼트는 영화의 미학적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카메라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