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영화가 황홀한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을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는 마음만 먹으면 아주 먼 과거로 혹은 아주 먼 미래로 시간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 플래시백(flashback)이란 ‘뒤를 비추다’라는 뜻으로, 영화의 ‘과거 회상 장면’을 지칭합니다.
플래시백의 미학이 단순히 ‘상황 설명을 위한 과거 회상’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평론가 수잔 헤이워드는 책 『영화 사전 - 이론과 비평』에서 “플래시백은 해당 내러티브 내에서는 가장 명확하게 주관적인 순간들이다. 플래시백은 기억과 역사, 즉 주관적인 진실의 영화적 재현”이라고 말합니다.
‘주관적인 진실의 영화적 재현’이라는 말이 뭘까요? 쉽게 말하면, 주인공은 플래시백을 통해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과거의 경험을 관객들에게 이미지의 형태로 ‘고백’합니다. 그래서 플래시백은 ‘정신분석’과 긴밀히 연관돼 있습니다.
헤이워드는 “플래시백은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고 억압되는지를 보여 준다. 관객은 과거의 비밀을 바라보는 증인의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최초의 ‘정신분석 의사’가 되며 주인공은 관객으로부터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2000)는 이러한 플래시백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영화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플래시백으로 조각된 ‘플래시백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내가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기억을 십분 이상 지속하지 못하는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메모와 문신을 활용합니다. 영화는 레너드의 단기 기억상실을 플래시백을 통해 묘사하는데, 이 상황에서 현재와 과거가 난잡하게 뒤섞이고 결국 영화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독특한 구조를 취합니다.
플래시백은 기본적으로 과거 회상을 목적으로 활용되지만 동시에 현재의 흐름을 잠시 끊어주는 편집 테크닉으로도 기능합니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와 강형철 감독의 <써니>(2011)는 플래시백이 그야말로 재기 발랄하게 사용된 영화들입니다.
어느 날 불쑥 자신을 떠나버린 엄마(문소리)가 원망스럽기만 한 혜원(김태리). 혜원은 엄마가 자신을 위해 집안 곳곳에 숨겨놓은 레시피를 통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합니다. 혜원은 플래시백을 통해 미처 몰랐던 엄마의 외로움과 아픔을 이해하게 됩니다.
팍팍하고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나미(유호정). 친구들과의 소중했던 추억을 찾아 떠나는 나미의 플래시백엔 학창 시절에 대한 아련함과 정겨움이 묻어납니다. <리틀 포레스트>와 <써니> 모두 현실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편집점이 굉장히 감각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펠릭스 반 그뢰닝엔 감독이 연출을 맡고,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 배우로 활약한 <뷰티풀 보이>(2019) 역시 플래시백이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마약 중독에 빠진 아들과 그런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 분투하는 아버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이 끊길 정도로 무질서한 플래시백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러한 영화의 진행 방식은 플래시백의 또 다른 의미(마약을 갑자기 끊을 때 일어나는 환각증을 이르는 말)와 조응하며 이야기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