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TV 뉴스 프로그램에서 각종 현안을 단호하고 명료한 어조로 얘기하는 앵커를 바라볼 때,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앵커가 보도하는 내용이 설령 ‘거짓’일지라도 왠지 모르게 믿고 싶어지지 않나요?
앵커의 인상, 말투, 목소리 등은 뉴스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만약 시청자가 앵커에게 신뢰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영화적으로 설명한다면, 앵커와 시청자의 눈높이가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아이 레벨 앵글’(eye level angle)이라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사람의 눈높이에 해당하는 앵글인데, ‘눈높이 앵글’ ‘수평 앵글’ ‘일반 앵글’이라고도 합니다. 앞선 언급처럼 아이 레벨 앵글은 TV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를 잡을 때 쓰이는 앵글이기도 합니다.
아이 레벨 앵글은 관객들에게 객관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감독들이 즐겨 사용합니다. 영화평론가 루이스 자네티의 말처럼 사실주의 감독들은 영상을 어떻게 조작할 것인가보다는 오히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둡니다. 영화의 형식보다는 내용에 방점을 찍는 것이죠. 그래서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말하자면 아이 레벨 앵글은 피사체에 대한 불필요한 묘사를 가능한 한 줄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자 할 때 자주 쓰입니다.
또한 아이 레벨 앵글은 관객들이 앵글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고, 피사체를 주체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효과를 일으킵니다. 즉 관객의 시점과 카메라의 시점이 같기 때문에 관객은 피사체를 객관화하며 능동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아이 레벨 앵글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일본의 세계적인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보통 카메라를 바닥 위 120cm 높이에 설치하는데, 이는 일본인이 다다미(일본식 전통 바닥재)에 앉아있는 높이입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다다미 쇼트’입니다.
다다미 쇼트는 카메라를 사람의 앉은 키 정도에 맞추고, 피사체를 롱 테이크(long take,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로 포착하는 촬영 기법으로 오즈가 영화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다다미 쇼트는 오즈의 영화 미학을 설명할 때 필수적으로 거론되는 영화적 기법입니다.
위 사진은 <꽁치의 맛>(1962)에서 시집간 딸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잠긴 아버지의 모습을 아이 레벨 앵글로 포착한 장면입니다. 이 작품은 오즈의 유작이기도 한데, <꽁치의 맛> 시나리오 집필 중에 어머니를 잃은 오즈의 상실감이 장면 곳곳에 묻어나는 영화입니다. 관객들은 해당 장면을 통해 오로지 영화 속 주인공만이 느끼는,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노년의 헛헛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즈의 또 다른 역작 <동경 이야기>(1953) 역시 아이 레벨 앵글이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도쿄에 온 노부부. 하지만 아들과 딸은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를 소홀히 대합니다. 전쟁 중 남편을 잃은 셋째 며느리만이 노부부를 정성껏 대접합니다. 위 사진은 노부부와 셋째 며느리가 함께 차를 마시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오즈는 우리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족문제’를 일본인의 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다다미 쇼트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제2의 오즈 야스지로’라 불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도 아이 레벨 앵글은 자주 발견됩니다.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2018)에서 물건을 훔치며 살아가는 ‘도둑 가족’들의 주거 환경이 주로 아이 레벨 앵글로 포착됩니다.
그들은 남루한 공간에서 열악하게 살아가지만 따뜻한 정을 나누며 서로를 보듬습니다. 감독은 인물들의 모습을 아이 레벨 앵글로 포착하는데, 관객들은 이를 통해 도둑 가족의 모습을 흡사 다큐멘터리의 느낌으로 왜곡 없이 바라보게 됩니다.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2013)는 아이 레벨 앵글이 역동적으로 활용된 영화입니다. 극 중 ‘국민 앵커’로 분한 하정우를 포착한 대부분의 장면은 아이 레벨 앵글로 촬영됐습니다. 감독은 테러범과 전화로 논쟁을 벌이는 하정우를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 혹은 조명 장치 등을 손으로 드는 것)의 아이 레벨 앵글로 포착하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현장감과 사실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효과를 창출합니다.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2018)은 거의 모든 장면이 아이 레벨 앵글로 촬영된 영화입니다. 영화는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이 각자의 핸드폰 내용을 공유하는 게임을 통해 미처 몰랐던 서로의 진실을 알아가는 모습을 블랙 코미디로 녹여낸 작품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식탁 의자에 앉아 있고, 감독은 이들을 아이 레벨 앵글로 포착합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음식을 먹으며 통화 내용부터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는 과정에서 활용된 아이 레벨 앵글은 장면에 묘한 사실감과 진실성을 부여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극의 몰입을 더욱 유도하는 효과를 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