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영화는 ‘선택’과 ‘배제’의 예술입니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찍지 않을 것인가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전자에 해당하는 부분이 ‘내화면’(on screen)이라면, 후자에 해당하는 부분은 ‘외화면’(off screen)입니다.
내화면은 관객들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세계’이고, 외화면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감각을 동원해 인지할 수 있는 ‘비(非)가시적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내화면은 카메라가 찍고 있는 그 순간의 세계이고, 외화면은 카메라가 찍고 있지는 않지만 관객 스스로가 상상력을 동원해 파악할 수 있는 ‘영화적인 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화면과 외화면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프레임’(frame)입니다. 쉽게 말해 스크린에 영사되는 사각형의 틀이 바로 프레임인 것이죠. 그런 프레임의 내부, 그러니까 내화면의 구도와 구성을 정하는 것을 ‘프레이밍’(framing)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결국 영화는 ‘프레이밍의 예술’입니다. 감독은 현실의 수많은 시공간 중에 하필이면 ‘그때 그곳’을 담아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사용되는 모든 장면(이미지)은 불필요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영화에서 프레이밍은 왜 중요한 것일까요?
수잔 헤이워드는 책 『영화 사전 : 이론과 비평』에서 프레이밍에 대해 “한 숏 내에서 주체와 대상이 프레임되는 방식은 특정한 해독을 제공한다. 프레임 내의 크기와 부피는 대사만큼 많은 내용을 전해 준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프레임 내의 크기와 부피’는 프레임의 물리적인 가로, 세로 비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화면에 프레이밍된 배경과 인물, 소품 등의 시각적 요소를 여러 구도로 배열하는 작업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프레이밍은 ‘장면 속에 무엇인가를 놓는다’를 뜻하는 영화의 시각적 표현 기법인 ‘미장센’(mise-en-scène : 내부 프레이밍)과 상통합니다. 그리고 이는 카메라가 피사체를 어떤 각도와 위치, 움직임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1995)의 오프닝 시퀀스입니다.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는 죽은 연인의 추도식이 열리는 마을로 내려갑니다. 이 상황을 감독은 ‘하이 앵글’(high angle : 위에서 아래로 찍기)과 ‘롱 쇼트’(long shot : 멀리서 찍기), ‘롱 테이크’(long take : 오래 찍기) 등을 통해 담아냅니다.
위 장면의 경우 카메라가 인물의 뒤를 바짝 쫓아가며 찍을 수도 있고, 인물보다 앞서서 내려오는 모습을 담아낼 수도 있는데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인물이 허위허위 내려가는 모습을 멀리서, 오랫동안, 고정된 상태에서 프레이밍합니다.
말하자면 <러브레터>의 오프닝 시퀀스는 피사체를 대하는 감독의 태도를 반영한 프레이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물의 삶에 함부로 카메라를 밀착시키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을 두되 오랫동안, 차분히 바라보겠다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죠. 감독은 내내 이런 절제된 화법을 구사하며 극을 진행시킵니다.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2019)의 한 장면입니다. 속 모르는 사촌 동생의 결혼 권유에 화가 난 쥰(나카무라 유코)이 차에서 내려 먼저 집에 도착합니다. 마음이 심란한 쥰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문 앞을 서성입니다. 이 상황을 감독은 ‘이차프레임’(프레임 안의 프레임)을 통해 포착합니다.
심란한 인물의 내면을 극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면, ‘클로즈업’(close up : 가까이서 찍기)을 활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감독은 카메라를 수고스럽게 이층 집안으로 가져와 이차프레임, 즉 창문이라는 프레임을 한 번 더 경유해 쥰의 상황을 포착합니다.
이로써 관객은 쥰의 존재론적 상태를 더욱 아련하게 체감합니다. 비록 인물의 얼굴을 또렷하고 분명하게 인지할 수는 없지만, 현재 그녀의 존재(혹은 사랑)가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걸 이러한 프레이밍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죠.
루이스 자네티는 책 『영화의 이해』에서 “사물이나 배우를 프레임 내 특별한 곳에 배치함으로써, 영화감독은 그 사물이나 배우에 관한 자신의 진술을 근본적으로 변경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똑같은 상황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포착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프레이밍의 미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