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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Feb 23. 2020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교차편집’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영화 예술의 묘미 중 하나는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차편집’(cross cutting)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교차편집이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발생한 사건을 교대로 병치시키면서 보여주는 편집 기법”입니다.


책 『영화 사전 : 이론과 비평』의 저자 수잔 헤이워드는 교차편집이 “주로 웨스턴(고난에 빠진 젊은 여자나 마을을 구하러 가는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과 갱스터나 스릴러 영화(예를 들면, 선한 자와 악한 자, 희생자와 살인자를 연결하는 컷)에 사용된다”고 말합니다.


수잔 헤이워드의 언급은 교차편집의 ‘서스펜스’(suspense) 효과에 집중합니다. 서스펜스란 “영화에서 줄거리의 전개나 이미지의 편집이 관객에게 주는 불안감과 긴박감”을 뜻합니다. 이처럼 감독은 서스펜스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차편집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사건현장을 벗어나려는 살인마와 그 살인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형사의 모습을 교차로 편집한 장면을 떠올리면 교차편집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때 관객은 형사가 살인마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 지에 관해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서스펜스이죠.


교차편집이 꼭 서스펜스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서로를 그리워하는 연인이 있고, 그들은 어떤 이유로 만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을 겨누지 못하고 두 사람은 이내 서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이 상황을 짧은 호흡의 교차편집을 통해 묘사하면 애끓는 멜로드라마의 감동을 느낄 수 있죠.



이준익 감독이 <동주>(2016)에서 사용한 교차편집은 역사와 개인의 비극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묵직한 감동을 안깁니다. 재일조선인 유학생을 앞에 두고 혁명의 의지를 불태우는 송몽규(박정민)와 시집 번역에 관한 일로 통화하는 윤동주(강하늘)의 모습을 교차편집한 시퀀스가 바로 그것입니다. 역사의 비극에 짓눌린 두 청년의 운명을 교차편집을 통해 스크린에 선연히 드러낸 이 감독의 연출은 실로 놀랍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2016)에서 사용한 교차편집은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일광(황정민)과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모습을 교차편집한 ‘굿판 시퀀스’인데요. 이 장면의 표면적인 효과는 서스펜스를 유발하기 위함이지만 후반부에 가면, 그것이 관객을 속이는 용도로 사용됐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 감독이 ‘굿판 시퀀스’에서 사용한 교차편집이 관객으로 하여금 일광과 외지인의 결투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실은 일광과 외지인 모두 효진(김환희)을 공격한 것인데 말이죠. 여기서 사용된 교차편집이 ‘화려한 언변’이냐 아니면 그저 ‘기만적인 말장난’에 불과하냐를 두고 당시 관객과 평단의 논쟁은 뜨거웠습니다.



조나단 드미 감독의 역작 <양들의 침묵>(1991)에도 교차편집이 등장합니다. 경찰이 연쇄살인마의 집을 서서히 포위합니다. 이어 현관문의 벨이 울리고, 살인마는 그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엽니다. 하지만 문 앞에 있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경찰은 엉뚱한 집을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죠. 현관문을 여는 살인마와 엉뚱한 집의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경찰의 모습을 교차시켜서 관객에게 착각을 유도한 것입니다. 이는 스릴러나 범죄 영화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편집 기법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같은 시간에 일어나지만 다른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교차로 편집해 보여주면서 두 장면의 상관관계를 연상하도록 하는 기법. 이것이 바로 교차편집의 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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