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석주 영화평론가 May 17. 2020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스토리와 플롯’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스토리’(story)와 ‘플롯’(plot)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같은 듯 달라 보이는 스토리와 플롯.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스토리는 ‘시간적 순서’로, 플롯은 ‘인과적 순서’로 사건을 서술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라틴어로 스토리는 ‘파불라’(fabula), 플롯은 ‘수제’(sujet)라고 합니다.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은 책 『영화의 내레이션 I』에서 “수제(플롯)는 영화 안에 파불라(스토리)를 실질적으로 배열하고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구체적인 원리에 따라 이야기를 배열한다는 점에서 수제는 하나의 체계”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스토리는 시간 순서에 따른 ‘이야기’이며 플롯은 그 이야기를 여러 원리에 따라 ‘구성’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가령 A가 B에게 “나 오늘 엄마한테 혼났어. 어제 엄마 몰래 학원 빼먹고 친구랑 영화관 갔거든”이라고 말한 건, 스토리가 아닌 플롯에 의한 서술입니다. 영화관을 갔기 때문에 혼난 것인데, A는 ‘영화관 간 일’보다 ‘혼난 일’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개 어떤 사건에 관해 말할 때 시간 순서를 뒤바꾸는 이유는 화자가 자신의 심정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분명 ‘혼난 일’보다 ‘영화관 간 일’이 먼저 일어났지만, 그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말하지 않는 건 A에겐 ‘영화관 간 일’보다 ‘혼난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간 순서에 따른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 것을 플롯이라고 합니다.


보드웰은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를 탐정 영화를 통해 설명합니다. 보드웰에 따르면 탐정 영화에는 ‘스토리를 구성하는 과정’이 존재합니다. 탐정이 여러 단서들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과 관객이 일련의 플롯들을 통해 스토리를 구성하는 과정이 유사하다는 걸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보드웰의 말처럼 플롯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영화 안에 시각적, 청각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관객이 영화 속에서 보고, 듣게 되는 것은 플롯이지 스토리가 아닙니다. 관객은 이미 배열돼 있는 플롯을 통해 스토리를 유추해냅니다. 그러므로 플롯은 “영화의 ‘극작술’이며 스토리의 정보를 모으고 추론하도록 우리를 자극하는 조직화된 일련의 단서”입니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스틸컷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2011)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갓난아기인 해리포터를 어느 집 현관 앞에 놓아두는 장면입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장대한 서사는 바로 이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근데 이건 영화(혹은 플롯)의 시작이지 이야기의 시작이 아닙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이야기는 시작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이 장면만으로 우리는 해리포터가 어떻게 태어났고,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 궁금증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적으로 풀립니다. 말하자면 영화의 순서가 플롯이고, 그 플롯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의 연대기적인 순서가 바로 스토리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사진=네이버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흔히 ‘플롯의 마술사’로 불립니다. 그 이유는 놀란 감독이 이야기를 배치하는 능력이 굉장히 현란하기 때문인데, ‘현란하다’고 표현한 것은 플롯이 극적 재미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그저 관객을 속이는 방편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어서입니다. 즉 똑같은 이야기(스토리)라도 어떻게 구성(플롯)하느냐에 따라 관객이 받아들이는 감흥은 달라집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덩케르크> 스틸컷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소재로 한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2017)는 해변에서 일주일, 바다에서 하루, 하늘에서 한 시간이라는 상이한 시공간의 흐름을 한 호흡으로 밀고 가는데, 이는 결국 플롯의 힘으로 영화의 재미를 배가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2016)의 ‘굿판 시퀀스’에서의 플롯 배열은 관객을 속이기 위한 ‘반칙’과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정리하면, 똑같은 영화를 보고 나와도 사람들은 그 영화의 줄거리를 전부 다르게 말합니다. 그건 같은 이야기라도 화자에 따라서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이 달라진다는 뜻인데, 누구는 결론부터, 누구는 본론부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게 바로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각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