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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가면 대부분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실무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박물관 학예연구사님들, 출판사 편집자님들, 기업 홍보담당자님들이 그러하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그들은 대개 30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그들은 대리급(일찍 취업했으면 과장급) 직원으로 한창 열심히 일 할 때다. 그것은 4년 차 기자(대학원을 가지 않았으면 5~6년 차)인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시험 준비 혹은 조별 과제 따위나 해야 하는데, 왜 여기서 깔끔한 정장을 입고 짐짓 어른인 척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을 한다. 기자들 앞에서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전시 설명을 하는 저 학예연구사는 대학 시절 조별 과제를 할 때 발표를 자처해서 하는 학생이었을까, 아니었을까 등의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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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상하면서도 치기 어린 감상에 젖을 때면 늘 생각나는 글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 나오는 대목이다.
"오래도록 목조 어선을 만들어온 작은 조선소에서 탕탕 나무망치 소리가 들린다. 어딘가 정겨운 소리다. 규칙적으로 울리던 소리는 갑자기 뚝 끊겼다가, 잠시 후 다시 들려온다. 이런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나무망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마음이 이십사 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소설을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 <노르웨이의 숲> 집필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던 삼십 대 중반의 작가였다. 일단은 '젊은 작가' 축에 속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도 여전히 '젊은 작가' 같은 기분이 들지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시간이 흘렀고, 당연히 나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 흐름은 어떻게 해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등대 앞 풀밭에 앉아 주위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나 자신의 마음은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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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나는 정말 조용한 학생이었다.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자라는 이유로 행사에서 유창한 척 사회를 보고, 매주 라디오 생방송을 하며, 한 분야의 대가를 만나 1~2시간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세상 거룩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세월의 흐름에 내가 변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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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우연히 학보사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기자의 꿈을 가지게 됐다. '세월호 참사'와 '신해철의 죽음'을 엮은 글이었다. 학보사로부터 내가 쓴 글이 신문에 실리게 될 거라는 전화를 받았을 땐, 정말 기뻤다. 그때 원고료로 받은 돈이 3만 원 정도였다. 처음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번 경험이었다. 누군가가 신문을 펼쳐 이 기사 저 기사를 살피다가, 우연히 발견한 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동의할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지, 그 과정을 머릿속에 그리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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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있었던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가서 원고를 마감한 후에 출판사로부터 온 책들을 정리했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가끔 연락했던 출판사 직원이 오늘부로 퇴사를 한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현장에서 만났을 때, 그는 나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그가 무슨 이유로 퇴사했는 진 알 수 없다.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아직도 회신이 없다. 내일쯤 연락이 올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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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었나. 내가 활동했던 대학생 기자단의 수료식이 있던 날이었다. 1년의 활동을 끝으로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기자단을 담당했던 직원이 내게 "석주 씨,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에 기자단 동기들 및 직원들과 정말 친하게 지냈는데, 지금은 그들 중에 누구 하고도 연락하지 않는다. 관계가 틀어진 건 아니다. 그냥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그래도 남은 게 하나 있다. 그 수료식 이후로 나는 일적인 관계에서 헤어지게 됐을 때, 항상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태도를 남기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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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