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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Mar 30. 2023

춘광사설(春光乍洩), 봄 햇살이 뚫고 들어오다

1.


마라톤을 달리면서 한계에 부딪힐 때, 하루키는 맥주를 생각한다. 얼른 달리기를 끝내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는 상상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끝내고 먹은 맥주의 맛은 달리면서 상상했던 맥주의 맛과 다르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2.



오늘 라디오에서 소개할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1997). 검색해 보니 재개봉 중이다. 아마도 장국영이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4월 1일 만우절에 맞춘 성격의 재개봉인 것 같다.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에 홍콩의 한 호텔 24층 객실에서 투신했다. 공식적인 사인은 우울증.


<해피투게더>는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 그리고 장(장첸)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퀴어영화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남성의 사랑과 이별을 아름답고, 쓸쓸하게 담았다. 그런데 왜 하필 아르헨티나일까? 왕가위는 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르헨티나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마누엘 푸익의 소설 중에서 <하트 브레이크 탱고>를 제일 좋아해서 그 제목을 <해피투게더>의 가제로 사용하고 싶었지만 정식 판권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탱고에 관한 영화를 찍는데 아르헨티나 말고 어디에 가겠는가? 다른 하나는 홍콩에서 가능한 한 최고로 멀리 떠나 이 세상 반대편으로 가서 두 남자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로 갔다. 그리고 나는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지만 거절당하는 이야기',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관계, 그래서 동성애를 생각해내었다. 게다가 97년 이후에 홍콩에서 게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지 확신이 없었기에 더더욱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해피투게더>의 중국어 제목은 춘광사설(春光乍洩)이다. 외설스럽게 쓰이는 용어지만, 직역하면 '봄 햇살이 뚫고 들어오다'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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