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니셰린의 밴시>(2023)
마틴 맥도나 감독이 연출한 <이니셰린의 밴시>는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입니다.
'파우릭(콜린 파렐)'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은 절친한 친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콜름이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하는데요. 답답한 파우릭이 그 이유를 묻지만 콜름은 "그냥 이제 네가 싫어졌어"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왜 콜름이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는데, 초반 몰입감이 상당한 영화입니다.
이니셰린은 아일랜드에 있는 실제 있는 섬은 아니고요. 영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섬이에요. 밴시(Banshee)는 죽음을 예고하는 아일랜드 전설 속의 여성 혼령을 뜻합니다. 제목에서부터 뭔가 영화의 결말이 좋지 않게 끝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죠.
<이니셰린의 밴시>는 파우릭과 콜름의 사이의 균열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내전 상황이 간접적으로 묘사되는데요. 그러니까 감독은 내전이라는 전쟁 상황과 두 인물의 파국을 지속적으로 교차하면서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모든 결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을 명료한 인과 법칙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삶에는 이유 없이 발생하는 결과가 흔하게 일어난다는 얘기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의미도 없는 일이 우리의 삶 도처에 지뢰처럼 깔려 있는 것이죠.
가령 이 영화에선 내전 상황이 전제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아요. 어쩌면 삶이라는 건 이유가 뭔지 모르는 결과를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니셰린의 밴시>는 예고 없이 찾아온 파국에 끝까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파우릭과 별 이유 없이 우정을 끝내고 싶어 하는 콜름의 관계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냉소적인 유머 감각으로 점철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비유와 상징이 많은 영화이기도 해요. 한편 두 남자의 파국이 전쟁 상황과 계속 겹치면서 조금은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마을의 청년이 이유 없이 죽고, 여성은 볼모처럼 섬에서 육지로 떠나고, 사람들은 기괴하고 돌출된 행동을 하니까요. 이런 상황들이 영화에선 내전과 무관하게 발생하지만, 영화의 구조상 분리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