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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Mar 26. 2023

<더 웨일>의 찰리는 '디나이얼 게이'일까?

영화 <더 웨일>(2023)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연출한 <더 웨일>은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번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연 배우로 출연한 브렌든 프레이저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영화죠.


영화에는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라는 남성이 등장합니다. 찰리는 대학에서 강사 일을 하며 학생들에게 작문을 가르치고 있어요. 찰리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는데, 현재 그들과 헤어져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동성애자인 찰리가 사랑을 위해 가족을 떠났기(혹은 버렸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연인이 죽고 큰 슬픔에 빠진 찰리는 폭식에 의한 합병증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됩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직감한 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딸 '엘리(세이디 싱크)'와의 화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작문 수업에서 찰리는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쓰기'를 강조합니다. 사실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충고이기도 해요.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명확한 주제로 요점을 써나가는 일이잖아요.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 일을 찰리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거예요.



영화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아마도 찰리는 '디나이얼(denial) 게이'로 보입니다. 디나이얼 게이란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주위의 혐오적 시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을 이성애자로 정체화하는 게이를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찰리는 동성애자인 것을 숨기고 이성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것일 테지요.


이는 찰리가 살찐 자신의 모습에 추함을 느껴 피자를 주문할 때도 배달원과 대면하지 않고, 우편함에 돈을 넣어두는 방식으로 거래하는 상황과 맥이 닿아있습니다. 자신을 오롯이 직시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건데, 찰리는 그러지 못했던 거죠. 뒤늦게나마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살기 위해 전진하고 있는 찰리를 프레이저가 아주 훌륭하게 연기합니다.


<더 웨일>은 딸을 버리고 떠난 게이 아빠가 죽기 직전에 딸에게 계속해서 용서를 구하는 영화입니다. 저는 그러한 과정이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얼마간 이성애중심주의를 변호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성애중심주의로 묶인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자연화하고, 각각의 가족 구성원이 가진 개성이나 정체성을 무화하고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소은성 평론가는 <더 웨일>에 대해 "퀴어가 주인공이어도 되돌아오는 가족주의의 망령"이라고 평했는데요. 적절한 평가로 보입니다. 미안함을 느끼는 것과 용서를 구하는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그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3월 26일(일) 오후 2시 30분, TBN(강원) 두시N영화관(FM105.9)에서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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