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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Oct 30. 2023

미야자키 하야오의 내밀한 일기장

최근에 본 영화들에 관한 단상

1.


집이라는 안온한 공간을 그로테스크한 공간으로 변형하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잠>은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의 영화 <라이프>와 유사한 점이 많다. 공간의 스케일을 줄이고, 스릴러의 긴장감을 팽창하기. 정유미와 할아버지의 관계가 좀 헐겁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2.


폭탄이 터지기 직전의 긴장감이 거의 매 장면마다 있다. 다만 가난을 소재로 한 기존의 한국영화가 '빈곤 포르노'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그런 점에서 <화란> 역시 저어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에 날것의 생기가 감돌고, 송중기의 색다른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긴 하다.


3.


석유로 큰돈을 번 원주민 인디언에 대한 차별과 억압, 폭력 관한 영화다.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가 배경이다. 돈, 인종, 성별의 문제가 교차하고 충돌한다. 서부 범죄극과 멜로드라마를 섞었는데, 파멸하는 인간(혹은 사랑)을 서늘하게 관망하는 카메라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4.


성범죄 당한 친구를 위해 전종서가 복수해 주는 영화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의 연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발레리나>가 복수의 쾌감에만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석도가 여성이라고 해서 <범죄도시> 시리즈를 페미니즘 영화로 부를 수 없는 이유와 맥이 닿아있다.


5.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볼 때, 잘 이해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필자의 내밀한 당사자성을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의 '영화 세계'와 (우리가 잘 모르는) '인생 세계'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 같다. 현실에서 환상으로 접속하는 전후의 과정이 매끄러웠던 전작들에 비해 이 영화는 많은 괄호로 이루어져 있다. 주제는 간명한데, 주제를 뒷받침하는 주석들이 지나치게 불투명하다. 잘 몰라도 재미있는 이유. 하긴 남의 일기장이라는 게 항상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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