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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어쩌면 잊고살아가는중이다.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고찰. 오시비엥침

폴란드를 여행중이었다.

크라코프 2일째 되어가던 날.

크라코프에서 약 두시간정도 거리에

오시비엥침이라는 곳이 존재한다고 알게됐다.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의 모티브였고

약 70년가까이 된 근현대사의 유물이라 할 수있는

오시비엥침 수용소였다.

역사에 관심많던 나는 안 가볼수가없었다.

다만 불안했었다. 그런곳에 실제로 가본다는

마음에 불안함이 생겼었던건 어쩔수없었나보다.

#1 수용소앞 유족들의 사진들.
#2 아우슈비츠는 아직 눈물이 마르지않았다.
#3 아우슈비츠 입구앞에 걸린 문구
#4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독일말로는 아우슈비츠. 폴란드말로는 오시비엥침.

내가 느꼈던 이곳은 지옥이라고 표현하기도한다.

이곳에 수감되있었던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는 아무의미가없었다

너는 지옥에갈것이다라고 말하는것 자체가

부정되있는 말이다.

이곳 자체가 지옥보다도 무서운곳이니까.

#5 수감자들이 머물렀던 아파트식 건물들
#6 몇몇곳은 박물관으로 사용되어져있다.
#7 이곳이 박물관으로 보관되어져있는 17번수용소
#8 겉은 그럴싸해보인다.

이곳으로 끌려온 수감자들은 첫날부터

모든 옷을 벗긴 상태로 모든 소지품을 뺏긴 후

일일이 분류되어진다.

인간을 분류한다는것 자체가 잔인성의 시작이었다.

독일나치들은 2차세계대전 말.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전 유럽에 걸쳐 모든 곳에서 남녀노소 할것없이

포로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게된다.

이곳에 모인 수감자들은 최대 400만명.

그리고 하루 평균 학살한 수는 2만4천명까지

학살했다고한다.

#9 여러장의 사진들은 오시비엥침의 느낌을 피부로 와닿게 해준다
#10 실제로 사용했던 물품들이다.
#11 비누,주전자,접시등 아직도 보관중이다.
#12 실제로 신었던 천 신발.
#13 이 화장실을 보고 나도모르게 더 쳐다볼수가없게됐다.

이들에게 인권이라는건 입 밖으로 꺼낼수도없는

누릴수도없는 기본이었다.

저 화장실을 보다 나도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는데 아무생각이 들지않더라.

나라면 저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할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살아남을것인지 고민조차

할수없었을것같다.

어차피 이들에겐 죽음조차도 의미없는것이었다.

도망가거나 자살한 자들은 그들의 가족들을

대신 잡아와 수감했다고하니까.

#14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15 실제로 총살한 장소이고 그들을 추모하는 꽃이 그대로있다.
#16 오시비엥침 종탑이다 시간을 알리는 종.
#17 독가스가있으니 그만 들어가라는 문구.

아무 생각이 나지않았다. 남녀노소 가릴것없이

저 통곡의 벽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셀 수 없는 숫자의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총살을 당하고 사지가 절단된채 그대로 과다출혈로

죽어갔다 한다.

인간의 잔인성이란 도대체 끝이 어디있는가가

궁금하다면 오시비엥침이 그 끝이다.

실제로 촬영금지되어져있는 방이 하나있는데

그 방은 정말 구역질이 나올만큼 무서운 방이었다.

나치들이 정말 잔인했다는걸 느낄수있는게

여자들을 학살 한 후에 그 머리 카락을 다 벗겨서

한 곳에 모아두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 방은

그 머리카락을 모은 방인데

정말 말로는 표현 할수없는... 잔인함의 끝이였다

#18 수감자들의 이름과 사진 수감번호등이 적혀있다.
#19 전세계의 유럽인들,아시아인들,아랍인들이 포로로끌려온곳이다.
#20 고개를 숙일수밖에없는 이곳.

이곳에 들어온자들은 이름도 사라지게 된다.

팔에 새겨진 번호와 수감복에 새겨진 번호가

곧 자신의 이름이고 이곳을 살아가는 번호이자

자신이 죽게될 번호이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게 되는 절실한곳이다.

#21 실제로 학살장소였던 1번 가스실. 수천명이 학살된곳.
#22 지금은 무너져버린 3번가스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기
#23 비르켄나우. 제2수용소이다.
#24 그들을 추모하는 끊어진 기찻길.
#25 그들은 이 역사가 지워지지않게 보존중이었다.
#26 시들어가지만 잊혀지지않기를.

저 1번 가스실은 실제로 사용된 생화학가스로

수천명을 학살한곳이다. 가스실안을 실제로

들어가보았는데 속이 메스꺼움이 느껴질정도로

공기가탁하다. 가스실안은 정말 지옥이라고

느껴질정도다. 벽을 손가락으로 긁은 흔적도

보이고 살기위한 그들의 흔적이

가슴찢기도록 몸에 와닿는다...

그렇게 그곳을 뒤로하고 제2수용소이자

최대규모의 수용소 비르켄나우로 이동을했다.

독일나치들은 수감자들의 수가 급속으로

증가하자 제2수용소가 필요함을 느끼고

비르켄나우를 건설하였다한다.

물론 그 노동은 수감자들의 몫이었고

그들으 자신이 그곳에서 죽을줄도 모르고

그렇게 자신들의 무덤을 묵묵히 아무말도 하지않고

만들어갔다. 죽음을 기다리면서.

#27 비르켄나우 3번수용소로가면 수감자들의 사진이걸려있다.
#28 누군가의 아내이자 남편일수도있고
#29 누군가의 아들일수도있다.
#30 또 누군가의 어머니일수도있는 이곳은 마음을 아프게만한다.

비르켄나우는 오시비엥침 크기의 3배는 되었던

엄청나게 큰 곳이었지만 시설은 오시비엥침보다도

못한곳이다. 돌로만든 2층침대는 눕기만해도

허리가 아파오는 그런곳에서 수감자들은 하루하루

죽어갈 날만 기다리고있었다.

이곳에서 학살당한 수는 400만명정도.

그중에 40퍼센트는 유대인이라고한다.

하루에도 수천명이 방문하는 이 곳은

독일인들이 방문하는 숫자가 제일 많다한다.

한번은 독일인 여성분이 가스실을 보고 난 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옆에있던

폴란드 사람이 안아주는 보기힘든 광경을 보았는데

생각이 많아졌던 이 오시비엥침이였다.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또 나는 살아있는것에 감사를 느끼고살고있나.

두번 다시 이곳을 방문할 일은 없을것이다.

다만 이 역사가 반복은 되지않음을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할 권리는 없다.

누군가의 현실을 판단하고 비난할 권리는 없다.

오시비엥침 학살사건이 약 70년이 넘은 지금.

오시비엥침의 눈물은 우리와 비슷한 눈물이다.

반복되지않기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관심을가지고

인식을 바꿔가야하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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