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아나뭐하나 Apr 28. 2023

탱크 같은 엄마들

미취학 아동을 데리고 엄마 혼자 왔다고 주변 엄마들에게 알려지자 그녀들이 이렇게 말했단다.

"어머 또 어떤 탱크 같은 엄마야?"


'탱크 같은 엄마'


처음에는 뭐 그렇게까지 탱크 같아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살아보니 나는 정말로 점점 탱크가 되어가나 싶다.


지금 적을 두고 있는 학교에서는 매주 수업이 있어 나와 같은 과정에 다니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교류를 하게 되는데 아이 하나 또는 둘을 데리고 엄마 혼자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빠 혼자 아이를 데리고 지내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라는 걸 명확하게 나누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엄마 혼자 있으면 아빠가 있었다면 했음직한 모든 일들도 당연히 엄마의 몫이다.


얼마 전에 차에 문제가 생겼다. 

언젠가부터 브레이크에 소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점점 거슬릴 정도가 되었다. 

주변 수소문을 통해 믿을만한 정비사를 소개받았다. 그 사람이 시범 운행을 해보더니 우선 브레이크 페달을 갈아야 하고 디스크도 좀 손을 봐야 한단다.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선 차를 맡기는 것부터가 일이다. 차를 맡기면 그다음 집에 올 일이 막막하다. 우리가 사는 곳은 시골이어서 택시 같은 것도 잘 본 적이 없다. 렌트를 하려고 해도 렌터카 업체까지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이웃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에게 부탁했다. 차를 당일날 찾기 위해서는(이렇게 해주는 경우도 드물다) 저녁 6시 이후에 맡겼다가 8~9시경에 찾으러 가야 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각자의 차에 각자의 아이들을 태우고 정비소에 내 차를 맡긴 후, 그녀의 차로 모두 함께 우리 집에 돌아왔다가 저녁을 먹고 넷이 함께 내 차를 찾으러 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녀는 미국에 이민을 와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데 남편이 일 때문에 몇 년간 주말도 없이 너무나 바빠서 육아와 가사를 모두 혼자 도맡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내 처지를 잘 이해해 주었고 우리는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 육아나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차에 문제가 생기거나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남편이 있었으면 좀 더 수월하게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라면 물론 남편이 해결하기도 했겠지만 이런 서비스 분야의 시스템 자체가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갖추어져 있어 번거롭긴 했겠지만 크게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사실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다르게 생각하면 애석하게도 아빠가 있었다면 특별하게 했음직한 일들이라는 것들이 딱히 크게 없다는 말이다. 같은 과정에 다니는 남자 펠로우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놀이'이고 엄마는 '생존'이라고. 엄마가 경제력이 있을 경우에 그 부분은 더 심화된다. 

  

물론 집마다 다르겠지만 나와 같거나 비슷한 경우에 육아기 일정시간의 아빠의 부재는 그냥 엄마의 '삶의 질'이 좀 하락하는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유아기 만 5세 이하에서 아빠와 상호작용 정도가 높을수록 아이의 지능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하니, 그럼 아이의 지능에도 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겠다.


미국에 올 때 나는 강력하게 아빠 육아휴직을 제안했다. 남편의 대답은 분명하고 빨랐다.

퇴직을 하는 남자들이나,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욕먹을 각오로 선택하는 게 육아휴직이라는 것이다.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댄데, 그것도 대기업에서 아직도 아빠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라니 정말 실망스러웠다. 대기업이 이런 정도라면 중소기업은 얼마나 더 힘들 것이며 자영업자의 경우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것인지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다.


이곳에 와서 사귄 일본 엄마가 있는데 얼마 전에 둘째 아이(삼 남매 엄마다. 탱크계의 대모)가 놀다가 넘어져 눈 주변이 찢어져 혼비백산했단다. 아이를 들고 냅다 이웃으로 뛰어가서 "help me!"를 외쳤다는데 고마운 이웃의 도움으로 응급상황을 모면하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란다. 지나고 보니 재미있는 것이 그 상황에서 아빠는 어디에 있었냐고 묻는 엄마는 없었다. 뭐 어디 도움 안 되는 곳에 있었겠거니 하는 것이다... ㅋ


탱크 같은 엄마는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다.

좀 더 괜찮은 오늘, 그것보다 한 뼘정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바삐 움직이는 생기 있는 여자들이

살다 보니 엄마가 되었는데,

엄마가 되어서는 그 모습이 전처럼 생기 있고 발랄하다기보다 어딘가 탱크와 닮은 모습으로 변한 게 아닐까.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 시골에 울려 퍼지는 Dynamit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