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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Aug 23. 2019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흑수저 엄마의 씁쓸한 다독임.

오늘 아침 읽은 기사 하나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공부가 머니'에 나온 임호 배우의 삼 남매 아이들 방과 후 수업이 모두 34개라고... 끙...


솔직히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첫 번째는 아이들이 참 힘들겠다. 그래도 따라가니 대견하네.

두 번째는 우리 짱구 또래인데 짱구는 맨날 변신로봇 장난감 가지고 놀기만 하는데 어쩌지...


얼마 전에도 말 잘 듣겠다고 약속까지 하며 아빠를 꼬셔서 장난감 하나를 얻었고, 짱구가 다니는 태권도에서 받은 스티커를 다 모아 선물로 장난감을 또 하나 받아서 요즘엔 유치원 등원하기 전 그 바쁘고 정신없는 아침에도 그것 가지고 노느라 바쁘다. 그런데....ㅠㅠ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 든 엄마들이 꽤 있을듯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무라지는 못한다. 왜? 정답은 없으니까. 부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수학의 정석'처럼 딱 떨어지는 답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가 조금 시끄럽다. 여러 가지 시끄러운 일들이 많지만 그중 아이가 있는 엄마들에게는 법무부 장관 후보로 나온 조국 전 민정수석의 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솔직히 좀 억울하다. 그런데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만약 조국 전 민정수석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많은 기회와 특혜를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데 '독야청청'하겠다며 너는 너 실력대로 대학을 가라고 했을까라는 질문에는 머뭇거리게 되는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 테니까.


내가 여기서 임호 배우의 교육관을, 조국 전 민정수석의 왜곡된 자식 사랑을 두둔하자는 건 아니다. 단지 모두가 이 질문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걸 이야기하는 거다. 나도 돈 많아 대치동에서 살 수만 있다면 일명 '일타'강사 모셔서 우리 짱구 하고 싶은 거 다 시키고 외국 나가서 3년 살다 돌아와 국제학교도 보내고 싶다. 뭐하러 복잡하고 자주 바뀌는 우리나라 교육정책에 내 아이를 희생시키겠는가!



다양한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가르쳐본 결과 내 아이는 원하는 거 즐기면서 가르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여기서 왜 잠정 결론이냐 하면 나도 기회만 있으면 그 동아줄을 잡고 싶으니까. 하지만 잡을 동아줄이 없으니 잠정 결론을 내릴 수밖에. 한 번은 지인이 초등학생 과외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초등학생? 나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한다. 약간의 트라우마라고나 할까? 외국에서 돌아와 지인의 부탁으로 영어유치원에서 며칠 가르쳐본 적이 있다. 영어유치원은 학교처럼 교과시간표가 정해져 있고 나는 그중 한 반을 맡아서 수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만 해주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난 아이들과 특히 어린아이들과 놀아본 적이 없어서 누구 하나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10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고 모두에게 똑같이 관심 가져줘야 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고 집에 와서는 곧바로 기절이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빨리 선생님을 구하시라고 부탁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초등학생이라고? 도대체 초등학생에게 내가 뭘 가르쳐줄 수 있을까? Phonics? reading? speaking? 나름 준비를 해서 갔는데 결국 내가 가져갔던 교재가 모두 소용이 없었다. 그 아이는 대치동에 사는 초3 학생이었고(대치동 그때 처음 가봤다) 원서를 읽고 있었다.


지금 우리 짱구가 7살! 초3까지 3년! 우리 짱구는 '귀염 귀염' 귀여운 표정 지으며 나를 따라다니거나  변신로봇 자동차로 악당을 물리치느라 정신이 없는데 언제 공부해서 원서를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대학교 가서라도 원서 제대로 읽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이렇게 원하지도 않았을 텐데 짱구에게 흑수저를 물리게 되어 미안한 마음에 오늘도 공부하란 말 못 하고 짱구를 꼭 끌어안고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그래.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건강하고 밝게만 자라라. 미안하고 사랑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짱구는 얼굴을 들어 올려 '엄마! 짱구가 그렇게 예뻐?'하고 묻는다. '그럼 예쁘지. 그래도 짱구야! 짱구 친구는 공부를 엄청 많이 한다는데 어쩌지?'라고 말하고 싶은걸 애써 참는다.


얼마 전에 짱구가 몇 달 안 남은 생일 선물로 '장난감'을 제외하고 뭘 받고 싶냐고 했더니 잠시 고민하다 '드론'이란다. 겉으론 아직 짱구가 드론을 조정할 줄 모르니까 그것 말고 다른 것으로 찾아보자 했지만 마음속으론 이렇게 외쳤다.


야! 드론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

흑수저 엄마는 이렇게 오늘도 가슴을 친다.



그러면서도 예전 미국 보스턴에 갔을 때 하버드 대학교를 가본 적이 있고 학교에 있는  동상의 왼쪽 발을 만지면 3대 안에 하버드 대학을 간다는 속설에 혹하여 만지고 기념사진까지 찍은 1인으로써 한줄기 기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짱구야! 엄마 하버드에서 사진도 찍었다!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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