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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May 24. 2020

양석형 교수님 같은 아싸가 좋다.

이익준 교수님도 좋아요^^

처음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한다고 했을 때 꼭 본방 사수하리라 두 손 모아 기다린 1인으로써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기획. 제작해주신 많은 연출자님과 작가님들께 일단 감사를 드리고 싶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솔직히 심심한 이야기다. 드라마틱한  긴장감도 없고, 보고 나면 벌써 끝났어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뇌리에 꽂히는 스펙터클이 없다. 의학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다. 참 '목요일'같은 드라마다. 월요병도 없고, 일주일의 한가운데라 지친 수요일도 아니고 불금도 아닌 그냥 그런 목요일. 그리고 그래서 좋다.


처음 몇 회 동안은 '찐'아싸인 양석형 교수님은 말 그대로 극 중 모든 캐릭터 사이에서 아싸였다.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사람 같고, 무엇보다 마마보이라 별로였다. 그래서 그냥 여러 사람의 유형을 보여주려고, 5명 모두가 다 매력적이면 너무 비현실적이니까 여러 군상을 표현하기 위해 탄생한 캐릭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두둥! 저러고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냐며 대놓고 무시하던 민하 선생님이 갑작스레 고백을 하게 되었듯이 나 또한 이제는 양석형 교수님 나오는 장면을 찾아보는 조용한 팬이 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산모님은 끝까지 아이를 지키신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신 거예요. 산모님은 최선을 다하셨어요. 

무뇌아를 임신하고 끝까지 지켜 분만하는 에피소드였다. 정말 대단한 엄마였고,  마음 아픈 산모였다. 주위에서 굳이 분만까지 해야 하냐며 만류하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산모는 자신의 아이를 끝까지 지켰다. 그리고 그러한 산모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에 산모의 평생 짐이 될 수도 있는 트라우마를 지게 할 수 없었던 양석형 교수님은 끝까지 산모의 곁에서 응원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못 듣게 하고, 눈물 흘리는 산모의 손을 꼭 잡아주며 진심으로 다독여 줄 수 있는 세상 마음 따뜻한 '찐'의사였다. 


유산은 병이 아니에요.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나 물어 들 보시는데 그런 거 없어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습관성 유산으로 임신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불안해하는 산모에게 이보다 더 담담하게 응원할 수 있는 의사가 있을까? 나 또한 짱구가 태어나기 전 배 속에 아기를 잃은 적이 있다. 더 이상 태아가 자라지 않아 몇 번이고 초음파로 확인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 바쁘신 선생님 진료실에서 넋 놓아 울었다. 그래도 내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셨고, 수술 전날 밤까지 혹시나 모르니까 수술 안 하면 안 되냐고 억지를 부리는 나를 다독여 주셨던 선생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그 선생님께서 짱구가 우리에게 왔다는 정말 감사한 소식을 들려주셨고, 본인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그래서 알 수 있다. 다 내 잘못 같고, 혹여나 또 잘못될까 봐 10달을 얼마나 마음 졸여가며 지냈던가! 한 번이라도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엄마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고, 양석형 선생님의 담담한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알 것이다.    


미안해. 내가 못 챙겨서. 내가 부족한 게 많아. 진짜 미안해. 
넌 좋은 의사가 될 거야. 책임감 있게 도망 안 가고 최선을 다했어. 너 오늘 너무 잘했어. 

응급상황에서 잘 대처한 민하 선생님이 '섬세한 곰 새끼' 양석형 교수님 실에 왔을 때 했던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조직 내 상사들에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한마디일 것이다. 이상하게 직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라떼'는 말이야로부터 시작해서 '꼰대'로 가는 길과 점점 가까워진다. 내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남에게 미루고, 아랫사람의 공을 내 것으로 만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이 시대의 '꼰대'는 하나 둘 늘어날 뿐이다.

그런데 '밥맛이고 눈치가 바가지인' 양석형 교수님은 달랐다. 내가 못 챙겨 미안하다고 교수인 양석형이 잘못을 인정했고, 레지던트 2년 차 추민하에게 책임감 있는 좋은 의사가 될 거라는 응원도 잊지 않았다. 내가 양석형 교수였다면 레지던트 2년 차에게 미안해 할 수 있을까? 글쎄...     



우리의 '섬세한 곰 새끼' 양석형 교수님이 일만 잘하고 대인관계에서는 불굴의 아싸였다면 지금과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용기 있게 송화에게 고백도 할 줄 알고, 익준쌤이 우주와 함께 호적에 올려달라고 하자 자연스럽게 우리 아들 오지랖은 이라며  응수하는 솔직하고 진지하게 농담도 하는 그런 사람이라 좋은 게 아닐까?


공부 안 하고 매일 나이트 죽돌이라도 과수석을 놓치지 않고, 수술도 잘하고, 유머 있고, 못하는 것 하나 없이 다 잘하는 낭만 닥터 자타공인 '인싸' 이익준 교수님도 좋고 부럽지만, 조용히 내 일 잘 해내고 주위 사람 잘 챙겨주고 재미는 없지만 진지하게 농담도 하는 솔직한 양석형 교수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좀 답답하긴 하지만 양석형 교수님 같은 '아싸'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양석형 교수님이 돌직구 추민하 쌤의 프러포즈를 받아주었으면 좋겠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를 벌써부터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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