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우울한 33세, 내 인생 첫 심리상담

1회기 | 나아질 결심

by 차원

병오년을 맞이하고 보니 어느새 34세가 되어 있습니다. 나이 많이 먹었단 생각이 들지만 훨씬 더 살만 합니다. 작년 여름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거든요.

이십대 초반부터 기복이 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난 몇 년 전 고도의 우울증 같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약먹기를 게을리 했습니다. 혼자 이겨내보려다가 점점 추락하는 나를 인정하고 작년에 우연히 서울시마음건강사업에 선정되어 인생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브런치에 연재 중입니다. 한 회기마다 실제 상담 내용을 일부 편집해, 당시 제 상황과 감정 그리고 상담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들을 글로 옮겨보고 있습니다.




01 프롤로그 : 33년의 세월 동안의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이력

02 1회기 상담내용

03 에필로그 : 내 인생 첫 심리상담을 마치고





01 프롤로그

: 33년의 세월 동안의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이력


상담을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서울시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에 선정되어서였다.

아마 이 행운이 아니었다면 심리상담은 내게 있어 여전히, 받아는 보고 싶지만 금전적 부담과 함께 상담사가 어떤 사람일지에 대한 걱정으로 안 했을 무언가였을 것이다.


혼자 오르락내리락하던 기복이 자주 올라가기도 했지만, 매번 다시 내리막을 칠 때면 전에 없던 깊숙한 곳, 마치 무저갱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는 생각이 나날이 신기록 경신이라도 되듯이 심해져 갔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이라는 건, 복불복이 크다. 라고 들었던 바. 좋은 상담사를 만나는지가 중요하다는 이유에서 그 어떤 상담센터도 제 발로 찾아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과거 어느 시점에서든 맛탱이가 간 상태의 나는, 요즘은 우울증이라는 게 다들 '마음의 감기'같은 거라고 말할 정도로 흔해졌느니 인식이 개선됐다느니 해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있었던 것 같다.


정신건강의학과는 두 군데 정도 찾았다. 매번 지각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반복하고, 수면 문제, 의지 문제, 언제나 기복이 심하고 꾸준한 걸 못하는 성격에 고통을 받으며 감정적으로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리셋증후군 같은 회피 기질까지 더해졌었다.


정보 수집벽이 있었으므로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ADHD라는 것이었고, 이거라면 우울증보다는 덜 심각해 보였다. 약도 먼저 알아보고 갔다. 콘서타, 메디키넷, 페니드, 아토목세틴... ssri snri 등의 기전 이해까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의 마음으로 마치 약에 맞서려는 것 마냥 알아보았다.


첫 번째 간 병원은 일부러 집과 먼 곳으로 갔다. 들락날락하는 것을 혹여라도 누구에게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저 ADHD 같아서 왔는데요, 하니 곧장 콘서타를 주셨다. 약은 맞지 않았다. 구역감과 식욕저하로 힘들었고, 약으로 인해 내가 변한다는 게 무서웠다. 더군다나 2주 연속 복용하면 보험가입이나 여타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걱정됐다. 그땐 아직 살만했나 보다. 두 번 정도만에 병원을 발길을 끊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약 1년에서 1년 반이 지났을까. 우연찮게 티켓이 생겨 수면박람회에 혼자 갔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의 무료수면/심리상담이라는 이벤트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면 문제를 상담받다가 들어간 지 채 5분도 안돼서 울게 되었고, 근처 정신과에 가보는 것이 어떻냐고 권유받았다. 울 일은 아니었는데.. 그럴 공간이 아니었는데. 나 정말 심각한가. 하는 생각에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렉사프로, 아토목세틴, 브린텔릭스 등을 아주 띄엄띄엄 먹다 말다 했다. 정신과를 가면 일단 엄청나게 많은 설문지를 써야 한다. 몇 번의 면담과 몇 번의 처방 끝에 고도의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독감이나 몸살을 크게 걸리면 수학 문제를 제대로 풀 수가 없다. 어려운 책을 읽기가 힘들어진다. 한마디로 지능이 저하되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린 독감 걸려서 뭘 못한다고 해서 지능 낮은 애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몸이 아프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우울증도 비슷하다. 중증도 이상의 우울감은 정신훈련 지체라는 것을 동반한다. 눈에 띄게 걸음이 아주 느려지거나 남이 말을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심한 경우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빨래나 설거지, 집정리, 방청소를 전혀 못하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정상인이 봤을 때 우울증 걸린 사람을 보면 의지박약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 또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왜 나는 자꾸 이렇게 의욕도 없고 게을러지기만 할까 하면서 자책의 굴레에 빠져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3월, 알코올과 관련해서 행동 조절이 전혀 안 되는 내 문제에 역시나 또 죄책감과 자기반성, 하지만 당시 술 문제가 도르마무처럼 반복되고 영화 엣지오브투모로우처럼 같은 날로 돌아가서 거의 같은 선택으로 실패하기만을 되풀이하며 무력감과 무망감에 젖어들고 있었다.


집 근처 병원을 다시 갔다. 예약도 없이 불쑥 찾아갔다. 정신과는 예약 없이는 받아줄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렇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푸라기를 쥐었지만 눈앞에서 다 빠져나가는 게 보인대도 당장 갈 수밖에 없었다. 진료 볼 수 있는 시간이 5분에서 10분 정도밖에 없는데 기다리시겠냐. 기다리겠다고 했고, 그날 CAT 검사를 하고 가자고 하셨다.

이때가 6월 초였고, 검사 결과를 다음 주에 보고 약을 써볼지 얘기해 보자고 하셨다. 그때 검사결과가 나왔고(억제지속/간섭선택에 문제) 아토목세틴을 소용량으로 쓰기 시작했다. 때마침 몇 주 뒤 서울시에서 청년 대상으로 하는 마음건강 사업을 알게 돼서 어찌 저찌 신청을 했다. 이런 거는 내 인생에 되어본 역사가 없고, 심리상담도 해본 경험이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마음으로 지원했다. 이틀 뒤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고 문자가 왔다.





02 1회기 상담내용


간단한 온라인사전검사와 TCI 기질검사 등 안내를 받았고, 상담사 배정까지 약 2~3주가 소요된다고 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하라는 걸 하고 나니 며칠 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상담사 선생님이셨다. 목소리를 들었을 땐 상담 짬바가 좀 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과는 연령대도 성별도 달랐어서 솔직한 말로는 약간의 실망을 했다. 내심 가졌던 기대와는 달라서 과연 내 말을 잘 들어주실까, 하는 걱정을 가졌다.



1회기 2025년 어느 여름의 토요일 오전 11시


내담자

안녕하세요. 문을 닫을까요?


상담사

네 닫아 주세요. 반갑습니다. 날씨가 더운데 선풍기 켜드릴까요?


내담자

네 감사합니다.


상담사

일단 상담 안내하고 상담 시작할게요. 네. 원래 상담 경험이 없으시다고 하셔서 자세하게 설명을 드릴게요.
제일 중요한 건 비밀 보장이라는 건데요.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전부 비밀 보장이 돼요. 다만 비밀 보장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스스로를 해치려 하거나, 타인을 해치려 할 때에요.

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50분 할 건데요. 상담을 하실 때 자신의 말씀들을 보통 많이 하시거든요. 그래서 어떤 얘기를 할지 에피소드를 가져오시게 하고, 여기서 대화를 나누면서 직접 찾아가시기도 하는 거예요. 어떤 말씀을 하실지는 차원씨가 찾아오시면 됩니다.


내담자

네. 알겠습니다.


상담사

네. 혹시, 상담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상담에 대한 어떤 기대가 있으신 지 잠깐 여쭤볼게요. 정답은 없으니까 편안하게 말씀해 주세요.


내담자

좀 나아지는 거요. 나중에 무슨 얘기를 하든지 결국에는 좀 더 그러니까.. 뭐 제가 아예 말수가 없진 않지만 다른 친구나 친한 사람한테 고민 상담하는 거랑은 다르게 좀..


상담사

그동안 많이 힘드셨나 봐요.
조금만 기다릴게요. 편하게 자신의 마음을


상담사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게 되네요.


내담자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그 상황..


상담사

네 감사해요. 제가 생각하는 차원씨가 차원씨의 삶을 잘 살고 싶은데 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인 요인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어떤 것인지 차원씨는 어떤 것을 보시는지 어떤 것을 경험하는지 제가 함께 보고 어떤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상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제가 해결책을 제시해 드리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함께 찾아가는 파트너십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좋아요. 그래서 차원씨가 어떤 것을 보시고 어떤 것을 경험하시는지 제가 알아야 됩니다.
우선 이 정도 말씀을 드리고요, 제가 자주 질문할 거예요. 그러면 대답하지 않고 대답하기 싫으신 건 지금 대답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해 주시면 됩니다.

(상담지원사업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해주셨다.)

그리고 심리 검사하시는 게 있어요. 하나는 MMPI 검사라고 이번에 새로 도입된 검사가 있어요. 혹시 들어보셨어요?


내담자

존재만 알고 있어요.


상담사

아 그러세요? 차원씨가 병원을 다니시는 것 같은데 병원 다니시는 분들이 많이 알고 계시거든요.
여기서 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이게 무료로 지원이 돼서 원하시면 하실 수 있는 신청해 드릴 거예요.
이게 단체 검사라서 바로 신청하는 게 아니라 모아서 신청하고 그러나 봐요.
그래서 저도 이제 이게 처음 시도되는 거라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데 인터넷 링크가 갈 거예요.
약 한 시간 정도 편안한 마음으로 하시면 될 거예요. 그리고 이제 저는 상담한지는 20년 정도 됐고요. 학력은 박사 수료예요. 혹시 저나 상담에 대해서 궁금한 점 있으세요?


내담자

아직은 없는데 생기면 여쭤보겠습니다.



상담사

보통 소개로 오시는 분들은 얘기를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얘기를 듣고 오시니까 이미 정보를 갖고 오셔서 좀 궁금한 점이 없는데 서울시 이런 것들은 그냥 배정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원하지 않는데 뭔지도 모르게 배정되고 그게 누군지 모른 채로 오시다 보니, 처음에 궁금한 것들이 있는데 안 물어보시는 분도 있으시거든요. 편하게 물어보시면 제가 답해드릴게요.

그러면 상담을 받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ADHD 증상이 있으신 건가요? 그리고 직장과 친구 관계 등에서 정서적인 불안감이 있고 회의감도 있고, 주의 집중력 문제가 있고, 우울보다는 adhd 때문이고 그러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상담을 어떤 도움을 받고 싶으신지 어떤 원인이 있으셨는지 좀 편안하게 하고 싶은 얘기 해주세요.
말씀을 정리하지 않으셔도 되거든요.
그냥 떠오르는 대로 편안하게 해 주세요.


내담자

일단 되게 다방면으로 제가 뭘 막 약간 항상 문제 그러니까 뭔가 항상 약간 그러니까 사람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있을 때 어떤 기본 값이라는 게 이제 있잖아요. 기본 값이라는 뭐냐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가볍고 이런 상태가 별로 없고, 항상 제가 어딘가 약간 고쳐야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는 그런 느낌이 되게 심했거든요.

그래가지고 이제 그런 생각을 하느라 에너지가 다 소진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좀 한계가 느껴지는 건지, 뭔가 그런 게 계속 누적되니까 되게 쉽게 좀 기력도 떨어지고 그래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가 뭔가 배려심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누가 뭘 하자고 하면은 그냥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제가 진짜 하고 싶은지랑 상관없이 다 약간, 오케이 하는 거죠. 근데 그것도 막 되게 착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좀 그냥 앵간에서는 그냥 뭐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요. 저도 제 자신을 잘 모르고 그렇게 해버리니까 막 나중에는 이제 집에 오면은 집이 너무 해방감이 드는 장소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혼자 있는 게 좋다라는 얘기를 하긴 하는데 그것도 마냥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그렇게 해왔던 게 크다 보니까. 최근에는 그런 걸 느끼면서는(인지하면서) 그냥 제가 꼭 안 가도 되는 자리는 이제 안 가는 선택을 하기 시작한 게 그나마의 어떤 발전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저를 알게 된 거죠. 근데 어떤 선택을 할 때 이거 안 하기로 했다, 이러면은 그냥 깔끔하게 끝내고 다른 걸 하던가 뭐 이렇게 넘어가면 되는데, 또 한켠으로는 괜히 그랬나 이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고 그런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이런 상황에 많이 빠지다 보니까 좀 마음 편할 날이 좀 없어요.


상담사

갈등 상황에 많이 놓이시나 보네요.


내담자

네, 제 자신이 뭔가 되게 모순적이고 누구나 그런 면이 있겠지만 좀 약간 그런 게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제가 한 살 차이 나는 친언니가 있는데, 어릴 때는 저랑은 성향이 많이 달라서 어릴 때는 싸우기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제가 심각하게 고민을 얘기하면은 그냥 되게 간단하게 다들 그래, 이런 식으로 해요. 그게 상처가 된다 라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시야가 트이는 경우가 많긴 했거든요.


내담자

근데 언니랑은 가족에 대한 그런 인식이 생각보다 달랐더라고요.
(그런가요.) 네 언니는 우리는 솔직히 막 되게 풍족하게 자라고 뭐 그렇지 않냐 이런 쪽이더라구요. 저는 언니한테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보다 더 잘해준 것 같다 이런 뭔가 생각이 컸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제가 겪은 얘기를 하는데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이제는 좀 어른이 됐으니까 그냥 그런 얘기는 잘 안 하거든요.



상담사

그 부분에서 뭔가 마음에 맺힌 것들이 있네 많네요. 눈물 나면 편안하게 우시고 그다음에 말씀하세요.


내담자

그런 것들이 지금은 제가 느끼기에는 반반인 것 같거든요.
살제로 그런 것들이 있던 게 반이고, 제가 어릴 땐 그런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또 반은 그냥 제가 그만큼 언니랑 기질 자체가 달랐던 사람이었던 거예요.
되게 예민한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겪은 상황을 이렇게 얘기를 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저 혼자서만 가지고 있었던 거죠 오랜 시간을. 제가 기억나는 게 초등학교 6학년 때 특별활동부로 상담부를 들어갔어요. 초등학교 때이긴 하지만 그때 이제 학교에서 어쩌다 보니 울면서 차별에 관해서 얘기를 했었는데 상담 선생님이 이제 그런 거를 부모님께 가서 말해봐라 하고 말하기 어려우면 선생님이 도와주겠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그냥 제가 어머니께 얘기를 시도했을 때 곧장 화를 내셔서 관뒀었거든요.


상담사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내담자

네. 그때 경험을 통해서 어머니는 제 얘기를 차분하게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기대는 사라졌던 거 같아요. 결국 잘 해결됐다고 말씀드리고 그냥 넘어갔거든요.
그 이후로 저는 언니처럼 고민이 있으면 상의하고 이런 걸 하지 않으니까 오해나 불만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졌던 거 같아요. 뭔가 진지하게 얘기를 하는 것 자체를 잘 못하기도 하고요.


상담사

말하는 것도 정리가 되고, 자신이 무엇을 알아야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달을 할 수 있어요. 단순한 분들은 정리가 금방 되거든요. 왜냐하면 재료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데 민감하고 섬세한 분들은 재료들이 너무 많아서 이것들을 정리해서 말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해요. 그런 특성을 부모님들이 각자의 개성이나 특징으로 알고 받아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부모님들이 나쁜 분이라기보다는 심리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부모님들이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한계가 있어서 그런 것들을 확인해 주거나 그러지 못했네요.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겠어요.


내담자

예를 들면, 초중학교 때는 뭔가 돈을 주고 사는 거라든지 아니면 친구랑 나가서 노는 거라든지 이런 걸 허락을 받아야 하는 나이잖아요. 근데 허락을 구했을 때 한 번도 시원하게 그래 한번 해봐. 뭐 하면서 놀거니. 재밌게 놀고 와. 이런 식의 긍정적인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어서 거절이라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그 이후에도 허락을 받는 것이나 뭔가 진지한 것 등 물어보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상담사


내담자

나중에도, 또 안 된다고 하겠지 하는 생각뿐이고. 실제로 걱정했던 대로 단칼에 거절당하면 그 자리에서 터져버리고 하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이런 게 좀 반복이 됐어요.


상담사

감정이 쌓이게 되면 그것도 또 언어적으로 표현이 안 되면 터져버리죠.


내담자

네. 제가 성인 되고 나서 그 친구, 지인들과 해외여행 가는 허락을 받으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상담사

죄송한데 성인은 몇 살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담자

그때가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상담사

그때는 과도기라 통보와 허락 중간에 있는 나이죠.


내담자

네 그때 제가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무 요구도 없이 그냥 가겠다는 허락 하나만 받고 싶었어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된다고 하셨어요. 허락 못해준다는 이유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이유로 안 된다고 하는 식으로 반복이 됐거든요. 그 당시 밖에서 엄마랑 둘이서 외식하다가 얘기한 건데 바로 안 된다고 반응이 나와버리니까 진짜 울고 소리치면서 막 그랬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도 참 저인게, 안 된다고 해서 안 하는 애가 아니어서 결국에 여행 가고 다 하긴 했어요.


상담사

그거 정말 다행이에요. 네


내담자

그러니까 저는 항상 그런 식으로 해왔던 거예요.
안된다고 해도, 저는 할 마음으로 통보를 한 거죠.
그러니까 일단 허락의 탈을 쓴 통보였어요.


상담사

그리고 이유가 뭐였어요?


내담자

그러니까 안 되는 이유 첫 번째는 돈을 못 준다 이런 게 있었어요. 그중에 하나는 그래서 돈은 내가 다 마련했다 뭐 이런 식으로 하고 그리고 두 번째는 같이 가는 사람들이 누군지 잘 모른다라는 거였어요. 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 그때 그러니까 제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몇 명 있는 동호회를 했는데 그 사람들이었거든요. 엄마 입장에서는 잘 모르시고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라 이해가 갔어요. 그래서 이름은 뭐고 뭐 하는 사람들인지 리스트를 적고 비상 연락망이랑 적어서 드렸어요.


내담자

남녀가 섞여 있었는데 그것도 문제라고 엄마는 생각하시고. 같이 가는 사람들 목록을 드렸어도 레포츠 동호회였어서 그런 여행은 위험하다는 얘기, 세 가지 안 되는 이유를 말씀하셨어요. 근데 그런 얘기가 저한테는 항상 거절의 한 이유가 되다 보니 어릴 때부터 저를 걱정한다기보다는 그냥 피곤한 일이 생길까 봐 과도하게 보호한다는 생각이 좀 있었어요.


상담사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현재의 나이에서 그때 과거의 사건을 좀 보면 내가 좀 위험하게 해서 부모님이 그러시는 건지 난 별로 위험하게 하지 않는데 부모님이 과도하게 그러는 건지,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담자

제가 항상 어디서 다치고 오고 이런 건 아니지만 다른 가족들보다는 위험 감수를 잘하는 성격이긴 했어요. 예를 들면 가족 여행 가서 저 혼자 번지점프를 한다든지 그런 성격이에요.


상담사

왜 여쭤보냐 하면, 지금 ADHD 약을 먹고 계신데 콘서타가 아니라 다른 것을 드시더라고요. 이 약을 찾아보니까 ADHD가 만성적일 경우에 쓴다고 해서요. 초민감성을 가진 성격이라는 HSP라는 게 있는데 여기에 가까운 ADHD로 보이는 것 같아서요.


내담자

예민한 쪽이요?


상담사

네, 예민한 쪽으로 가시는 거죠. ADHD은 보통 예민하지 않고 둔감한데 과잉 활동적이거든요. 그런데 좀 예민한 쪽이어서 그런 그런 분들은 잘 안 다치거든요.


내담자

어릴 때는 많이 다치긴 했거든요. 되게 어릴 때는 항상 무릎 양쪽에 딱지가 항상 져있다던지..


상담사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데, 아이들이 이제 자주 다치잖아요. 그 정도 수준인지 아니면 많이 다치는 건지 해서요.


내담자

많이의 기준이.. 막 툭하면 병원에 갈 정도 이런 건 아니에요. 저도 조심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요. 요즘은 좀 ADHD에 대한 어떤 인식들이 좀 많아지고 하니까 SNS에서도 사례들을 막 이제 만화 형식으로 그린 것들이 많아서 보는데, 그런 걸 보면은 이 정도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상담사

지금 느낌이 그래요.


내담자

그래서 저도 되게 긴가민가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적으로 생각하는 쪽으로 산만하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꽤 최근에 주의력 검사라고 CAT 검사를 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ADHD 약을 먹은 것도 한 달이 안 되거든요.


상담사

아, 지금 한 달이 안 되셨어요?


내담자

네 맞아요. 지금 다니는 병원도 한 2년 전에 처음 갔었고, 몇 번 가다가 뭔가 약이 그렇게 효과 있는 것 같지도 않아서 가다 말다 했었거든요. 초반에는 우울 쪽 약을 먹었어요. 제가 그땐 약에 대한 걱정이 되게 많아서 지속 복용을 못했어요.

2년 전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들이 좀 심해져서요. 에너지가 너무 없어지는 기분이 들고 그러면서 우울한 것에 취약해지고 생각도 너무 많은 게 힘들어졌어요. 특히 대인관계나 회사에서도 문제로 여겨지는 부분들이 생겨서 한 달 전쯤에 갑자기 병원을 갔던 거거든요. 내가 너무 힘든데 이게 ADHD로 인한 문제가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하니까 비록 띄엄띄엄이지만 2년 동안 봐온 선생님께서 그러면 CAT 검사를 하자셔서 검사를 했던 거죠.

결과는, 제가 주의력은 그렇게 떨어지진 않는데 충동 조절이 좀 어렵대요. 그리고 또 주의력을 간섭하는 게 있으면 바로 주의력을 빼앗긴대요. 카페에서 친구랑 얘기할 때 옆 얘기 때문에 친구 얘기가 안 들리고 그런 거요.


상담사

말씀 중 죄송한데, 저도 카페에 가면 옆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앞에 사람 말이 안 들려가지고 카페 가서 대화하려면 아주 조용한 조그마한 카페 이런 데를 가야 돼요. 제가 청각에 민감하고 좀 예민하고 섬세해서 정신이 없어지거든요. 차원씨도 되게 섬세하시네요.


내담자

네.. 그 두 가지(억제지속, 간섭선택)가 좀 낮게 나오고 나머지 중에 오히려 복잡한 문제는 되려 집중력이 높아지고 그런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상담사

제가 보기에 차원씨는 ADHD보다는 HSP 성향이 큰 분이신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나 자신’과 증상을 구분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내담자

나와 증상을 구분하라고요?


상담사

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반추 사고가 일어나고 예민해지고 불안해지는 것을 ‘나’와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차원씨는 느끼는 것 전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그대로 여기고 있어요.


내담자

그렇군요. 아직 잘 와닿지는 않는데 노력해 볼게요.


상담사

네. 차원씨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인지하고 있어요. 능력이 있다는 말을 꼭 알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시간이 다 되어서 여기까지 할게요.


내담자

네.. 감사합니다.



03 에필로그

: 내 인생 첫 심리상담을 마치고


첫 상담이 끝난 직후엔, 아래 세 가지 이야기가 마음에서 계속 맴돌았다.


1. 상담에서의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2. 나와 증상을 구분하자

3. 당신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33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상담이라는 것을 마치고 상담실을 나올 때, 내 주변의 공기가 달라져있었던 것도 같다. 살짝 가벼워진 느낌인듯 아닌 듯… 눈꺼풀의 무게도 좀 가벼워진 것 같고… 한층 더 밝아진 한여름 정오의 햇볕이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지만 점점 두서없이 많은 얘기를 했었다. 각 잡고 말하자면 말할 게 많지만 뭐부터 이야기해 봐야 좋을지 몰랐다. 다만 이 상담으로 어떤 것을 기대하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원하는, 달라지고 싶은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부터 흘렀던 것 같다. 정말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그때는 원하는 달라진 모습이 어떤 모습이다 라는 것조차 명확히는 몰랐던 때 같다(실은 아직도). 그 간절함과 막연함에 눈물이 먼저 대꾸했다. 고개 숙이고 우는데 내 앞에는 조용히 기다려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ADHD 답게 모터 달린 입으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진짜 두 팔 걷고 인생 하드모드로 진입하는 거, 그거 좀 강제 종료라도 하고 싶었다. 내가 그 질문에 결국 답했던 건,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가 줄줄 세고 생각하느라 힘든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잠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해서 삶이 좀 나아진다는 느낌을 정말이지 느끼고 싶었다. 편안함에 이르고 싶었다. 이대로 두면 나락으로 곤두박질할 나를 붙잡고 싶었다.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전부를 본인 스스로와 분리해야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단번에 깨달을 수는 없었지만 설핏 느껴졌다. 어떤 생각이나 판단은 떠오른 동시에 내게 철썩 달라붙었다. 그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가 나라고 믿던 것들이었다. 좋지 않은 쪽으로 고착화된 이미지들.


선생님의 '능력이 있다'는 말이 스스로를 믿기만 한다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언제나 수만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강박적으로 평등하게 고려하려는 비논리적인 성향을 가진 나지만, 나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내 얘기를 듣고서 ‘당신, 좋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해준다면 그 가능성을 신뢰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원래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심리학이나 철학 같은 것에도 많은 지식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열심히 찾아만 보면 의지로 뭐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내 확고했던 사고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첫날, 약간은 말캉말캉하고 유연해진 기분으로 상담센터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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