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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백년 Aug 24. 2023

사랑의 범위 그리고 정의

영화 <남과 여>

출처 : 다음 영화


사랑의 범위 그리고 정의

영화 <남과 여>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뚜렷한 편이다. 우선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아야 하고, 줄거리나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한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서둘러 짐을 챙기거나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영화보다는, 차분히 앉아 생각할 거리가 있는 영화면 좋다. 오히려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동안 몇 번을 곱씹어볼 만한 영화를 선호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기준보다 사소한 것에 끌릴 때가 있다. 제목이 마음에 쏙 든다거나,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장소가 배경이 된다거나, 예고편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리고 포스터에 담긴 배우의 눈빛에 홀려서. 영화 <남과 여> (2016)가 그랬다. 영화를 본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포스터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특히 전도연의 눈빛이.


<남과 여>는 ‘불륜‘에 관한 이야기다. 핀란드의 드넓은 설원을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내 봐도, 공유와 전도연이라는 손꼽히는 배우의 연기와 외모로 가리려 해 봐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식의 사연으로 각 인물들에게 어떻게든 정당성을 부여해보려 하지만, 결론은 ‘불륜‘이다. 그렇지만 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기꺼이 영화를 두세 번 더 봤다. 매번 당하고 만다. 이윤기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시리도록 하얀 설원, 음악, 전도연의 눈물까지…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출처 : 다음 영화


불륜을 사랑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어떤 마음 짠한 사연을 갖다 붙여놔도, 곧 죽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아무리 섬세하게 판을 짜두더라도, 내게 불륜은 불륜이었다. 대학교 강의 중 드라마 작법에 대한 수업이 있었다. 우리 과에는 나름 유명한 드라마 작가님이 초빙되어 오셨었고,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에도 교수님이 포함돼 있었다.


“불륜도 사랑이다.”


드라마 강의 중 교수님이 했던 말이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교수님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이랬다. 작가라면 불륜도 사랑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야기를 대할 때 차별과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도 사람들이 이해하게끔 상황을 설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보다 훨씬 이전, 한때 일본문화에 빠져 살 때가 있었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으며 작가의 꿈을 처음 가졌고, 그들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잔잔하고 섬세한 문체가 좋았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쓴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에게 빠져서 다른 책들을 찾던 중 <안녕, 언젠가>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진한 여운이 남는 제목에, 당시로는 거금을 들여 책을 구매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불쾌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약혼녀와의 결혼과 성공적인 일, 탄탄대로의 삶을 앞두고 숨 막히게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 나누는 사랑.
그리고 25년 간 서로를 잊지 못하던 두 사람에게 찾아오는 운명적인 만남.


츠지 히토나리의 섬세하면서도 힘차게 뻗어나가는 이야기 전개와 잔잔하게 스며드는 문체로도 가릴 수 없었다. 결국 불륜이었다. 책을 덮을 때까지 들었던 생각은, 그래서 남은 여자는? 25년 간 서로를 잊지 못하던 주인공 남녀보다도, 남자의 옆을 지키던 여자의 인생은? 애틋하기보다는 화가 났고, 아름답다기보다는 무책임한 편에 가까웠다. 언제나 남겨진 쪽을 생각했다. 주인공보다 그를 짝사랑하는 쪽에 더 마음이 갔고, (사랑으로 포장된) 불륜의 결과로 남게 될 각자의 배우자들을 신경 썼다. 그러한 상황을 실제로 겪었다거나, 피해를 입은 건 아니었지만 작은 신념 같은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륜은 안 된다. 결코 불륜은 미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출처 : 다음 영화


아마 처음으로 불륜에 대한 생각을 깬 것은 <남과 여> 덕분이었을 것이다. 공유와 전도연이어서 그랬을지 몰라도, 불륜이지만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그들이 하는 별 것 아닌 사랑도, 눈빛도, 미소도. 그러나 마냥 행복하게 보이지만은 않았던 건 내 착각이었을까. 미소 뒤에는 불안이 있었고, 사랑스러운 눈빛 뒤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어야 할 것처럼 조급했고, 순간에 빠져 든 것처럼 보였으나 자꾸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겨진 쪽을 생각해 봤을 때도, 그들의 만남은 당연한 것이었다. 전혀 이해받고 위로받지 못하는 각자의 가정에서, 외딴섬처럼 외로운 두 사람. 서로의 몸을 탐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이런 감정보다는 그저 숨을 쉬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출처 : 다음 영화


비슷한 선상에 <화양연화>가 있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오는 두 부부. 어느 순간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고, 비밀스러운 만남을 지속하다가 순식간에 서로에게 빠져드는 두 사람.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랑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들 또한 극도로 조심스러웠고, 스스로 불륜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숨고 숨기고 감추는 마음들이 아렸다.  <화양연화>가 훨씬 이전에 나온 영화고, 한층 더 섬세하고 완벽에 가까운 연출을 보인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에게만큼은 <남과 여>가 더 마음을 휩쓸었다. 아마 마지막 장면에서 한바탕 실컷 울고 담배를 피우는 전도연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기 때문일까. 끝까지 숨죽여 아파하는 것보다 한 번은 실컷 울어재끼는 모습이 좋았다. 그렇게 털어내는 쪽이 오히려 더 희망적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라고. 반드시 연결되어야만 하는 마음들이 있을 것이다. 마음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움직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간들.


그리고 마음의 끝엔 언제나 사랑이 있다. 한때 사랑을 찬양했고, 언젠가부터 사랑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 일이 사랑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사랑이 최우선이다. 무조건 사랑을 외치고 싶다. 지금처럼 세상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사랑이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자라고, 먹고, 생활하고, 배우고, 최고의 상대를 찾는 것이 인생숙제였던 시절. 때로는 그런 낭만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사랑이 전부였던, 우선시 되었던 한때.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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