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운백년 Dec 13. 2023

출간 전날의 부산스러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하는 독립출판



12월 13일, 정식 출간일 D-1 이다. 사실 지금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니 엄밀히 따지면 출간일이긴 하나, 아직 출간일 전날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 아직은 하루가 더 남았다는 그런 기분.


오늘은 하루종일 분주했다. 오후엔 미뤄두었던 독립서점 입고메일 발송 작업을 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타 지역의 주요 독립서점을 쭉 리스트업 해두긴 했지만, 메일을 보내기 전 다시 한번 각 독립서점의 특성이나 최근 동향 같은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 각종 SNS를 염탐(?)하느라 오후가 다 가버렸다. 우선 책 만들기 수업을 들었던 '스토리지북앤필름 로터리점'은 가장 먼저 입고가 확정되었고, 잇따라 크고 작은 서점 여러 곳에서 입고를 수락하는 회신을 받았다. 카페에 앉아서, 하나둘 입고 수락 메일이 올 때 마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라고 청승 맞게 혼자 중얼거려야했다.




저녁을 먹고 부터는 택배 작업을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출간일 전날 사전예약 해주신 분들에게 책을 모두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굿즈로 보내기 위해 제작한 엽서 제작이 생각보다 늦어졌다. 이러다가 출간일도 맞추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출간 전날인 오늘 엽서가 도착했고, 서둘러 사전예약자들을 위한 택배포장에 돌입했다. 책을 포장지로 감싸고 엽서를 올려 마끈으로 감싼 뒤, 크라프트 종이를 깔고 포장을 마무리했고, 이내 13개의 소중한 박스가 완성되었다. 매우 작은 수량이었지만 첫 시작치고 나쁜 숫자도 아니었다. 게다가 포장을 다 끝마칠 때쯤엔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13개만 들어오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곧장 우체국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미리 예약등록을 실시했다. 우체국 방문 전 사전예약을 하면 택배 갯수에 따라 할인이 되기에 놓칠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돈인 셈...)


사전예약자들을 위한 포장을 마친 뒤에는 인디펍과 책방에 보낼 택배 포장을 시작했다. 서울권의 책방은 대부분 방문입고하면서 얼굴도장도 찍고 책도 한 권씩 사서 나올 생각이고, 이외의 지역이나 방문입고가 어려운 책방은 택배로 입고할 예정이다. 사전예약자를 위해 포장할 때도 기분이 몽글거렸지만, 인디펍이나 책방에 보낼 택배포장을 할 때는 더 기분이 이상해졌다. 사전예약자는 대부분 지인이거나, 평소 SNS로 지켜봐온 특정 대상이었지만, 책방에 보내는 책들은 정말 어떤 주인을 만나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제발 좋은 사람에게 닿기를... 혼자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절박하다시피한 기도와 함께 책 포장을 완료했고, 인디펍에 30권이나 보내야 하다 보니 무게가 꽤 무거워 져서, 금액이 좀 있더라도 방문택배를 신청했다. 이런저런 택배 작업과 독립서점에서 온 메일에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문의사항을 남기는 등 메일 처리를 하고 나니 어느새 날이 지나버렸다. 여전히 나는 출간 전날을 사는 기분으로 살아보려 노력하지만.




입점 6개월 후 판매가 없을 시 반품 요청할 수 있습니다.


독립서점과 계약서를 작성하며 덜컥 숨이 막힌 구절이었다. 내 손을 떠났다고 생각한 책들이, 결국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다시 내 손에 돌아올 수 있겠구나. 사실 팔리는 것만 생각했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구나. 책방에 언제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겠구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벌써 서글퍼졌다. 입고하기도 전인데, 뭐하러 벌써 되돌아올 생각부터 하고 있는 건지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되지만.


H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며, 차라리 입고 거절 메일을 받는 게 나중에 반품 메일 받는 것보다 낫겠어, 라고 말했다. 그러자 H가 말했다.


그건 책방이 마케팅을 못해서 책을 잘 못 판 거야. 네 잘못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되돌아오지도 않은 책에, 설사 책이 되돌아온대도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당연히 책임은 글을 쓴 내게 있겠지만, 그럼 나는 그저 인정하고, 더 좋은 글을 쓰면 될 일. 나 자신이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진 듯, 그렇게 반품책 하나하나에 나를 실어갈 필요도 없겠다.




내일 눈 뜨고 일어나면 정식 출간일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 이제 누군가 읽게 될 글로 태어나는 날. 사실 대형서점에 유통되는 것도 아니고, 독립서점에도 아직 유통 전이다 보니 출간일이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인의 손에 내 책이 닿고, 읽힐 것이라 생각하니 설레면서도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나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기분. 하지만 이제 어떻게 읽느냐는 그들의 몫이므로,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새겨 들어야 할 비판은 새겨 듣되, 마음 쓰지 않아도 될 비난까진 담아두지 말자. 초연해지자. 뭐 그런 다짐.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종류의 헛헛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