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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밧 Feb 13. 2023

당신의 산티아고는 무엇인가요?

[파르밧 모험여행 ㅣ 산티아고 프랑스길 800km]

산티아고 800km를 걸었다. 도보 여행의 대표적인 까미노는 종교적인 의미가 깊었던 길이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페인의 수호성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향하는 여정이다.  사람과 자연을 만나는 다양한 경험들은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진정한 여행자의 시간이다.





떠나기 전의 두려움과 설렘은 익숙한 일상이 된다. 복잡했던 상념들이 단순해진다. 길 위의 풍경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전반전이 지난다. 후반전으로 갈수록 걱정이 크다. 채우기 위해 떠났지만 허함이 밀려든다. 매년 산티아고를 걸었다. 여행 인솔자로 함께하며 인연이 되었다. 10년째 순례를 오는 스페인 아저씨. 한 달 전 부인이 돌아가신 아픔을 딛고 온 순례자. 누구에게나 삶의 시련이 밀려든다. 사람들은 무언가 버리기 위해 걷는다고 했다.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프랑스길. 생장 ~ 산티아고 800km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 3대 성지로 선포.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
여행은 하얀 도화지. 나만의 그림을 완성해 가는 과정


잃어버리는 것이 많았다. 양말, 슬리퍼, 충전기, 새로 산 패딩. 작은 배낭 속 물건들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짐은 갈수록 가벼워졌다. 걷는데 문제는 없다. 10월의 마지막 언저리. 갈리시아 오세브레이로 고개를 넘었다. 많은 눈이 내렸다. 운동화는 금세 젖어 버렸다. 시린 발의 한기를 느낀다. 현재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 여기 있음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800km 순례 후유증은 치명적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이 떠지고 어딘가를 향해 준비하고 떠나야 할 것 같다. 하늘을 보면 메세타 평원의 푸르름과 구름이 생각난다.






피레네 운해

산티아고 800km 여정의 시작. 프랑스와 스페인을 가르는 피레네를 넘는다. 첫날부터 산을 오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침 안개가 걷히고 해가 오른다. 발아래 놓인 마을 풍광은 힘들게 올라온 보상이다






노란 도화지

여름의 산티아고는 야생화가 만발하다, 노란 유채꽃, 빨간 양귀비, 강열한 태양아래 해바라기는 한 폭의 수채화다. 사람들에게 시름을 잊게 한다. 향기에 취해 길을 멈추고 아무 곳에나 배낭을 내려놓는다.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순간이다





동행

스님이 어떻게 산티아고에 오셨을까? 네팔 트레킹도 다녀오셨다고 했다. 같은 모자, 배낭, 스틱. 외국인 순례자들의 호기심이 가득하다 “Are you Kung Fu Master?"
중국의 소림사 쿵후 마스터로 생각한다. 터널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사진을 찍어드리고 싶었다. 고행의 길 부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여명

순례자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알베르게 숙소의 아침은 부산하다. 꿈틀거리는 태양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어둠이 황홀한 빛으로 오른다. 후광을 받아 길게 늘어선 그림자는 앞서 걷는 친구다. 해가 올라 눈이 부셔올 때 그림자는 소리 없이 사라진다. 내일 또 만나. 나만의 페이스 메이커!





엄마와 아들

아침마다 만나게 되는 순례자들이 있다. "올라" 인사를 건넨다. 타이완에서 온 엄마와 아들

항상 심각한 얼굴로 거리를 유지한 채 웃음기가 없다. 화창한 날씨 노란 유채밭. 오늘도 그들을 만났다

멋진 배경에 두 사람 사진을 찍어드렸다. 아들은 엄마와 찍는 사진이 쑥스럽다
"스마일" 어머니는 아들의 팔에 기대었다. 내심 좋은 눈치 시시다. 함께 걷는다. 마음의 간극이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내 안의 나를 만나다. 철의 십자가

생장을 출발해 피레네 산을 넘는다. 쉼 없이 길을 걸어야 한다. 순례길에선 단순해진다. 복잡했던 상념들이 멈추고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고해성사를 하듯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240km 남았다. 노을이 아름다운 산골마을 폰세바돈이다. 1,505M 제일 높은 고개에 철의 십자가가 있다. 순례자들이 올려놓은 돌들이 가득하다. 누군가의 사진, 인형, 반려견 목걸이. 마음이 담긴 흔적들이다. 돌 하나 주워 올렸다.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곳, 철의 십자가!






지금은 대화 중

"올라! 부엔 카미노" 순례자들과의 인사로 하루가 시작된다. 같은 시공간의 까미노 친구들. 최적화된 걷기 근육이 적응될수록 행복감도 높아진다. 깨끗하고 눈부신 하늘. 초록 들녘의 산티아고. 빨간 배낭에 햇빛 가린 창이 넓은 모자. 그녀는 지금 대화 중이다. 자연이 그녀에게 그녀가 길에게






아! 목말라

비 오는 날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얼굴에 부딪는 비를 피하다 보니 자꾸 땅을 보게 된다. 진흙길에 풍겨오는 시골냄새. 축사가 있는 시골길을 지난다. 목마름을 즐기고 있는 소 ‘또로록 또로록’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줄기. 한 움큼 입안에 담고 싶지만 순간 사라져 버린다. 아! 목말라!






조랑말과 나그네

낯선 마을길 모퉁이를 돌 때 ‘뚜벅뚜벅’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더라!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르지만 “안녕 까미노 친구!” 비를 피해 멈췄다. 주인은 자기가 두르고 있던 목덜미 수건을 풀어낸다. ‘주룩주룩’ 흐르는 당나귀 얼굴을 닦아준다. 기다란 속눈썹 눈을 끔뻑거린다. 수레 안을 들여다보니 당나귀가 먹을 양식과 캠핑장비가 가득하다.




동네 짱!

길 위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난다. 길 고양이, 강아지는 순하기 그지없다. 사람을 좋아하고 경계심이 없다. 배낭에 항상 간식을 준비한다. 마트에 들르면 잊지 않고 양이, 강아지 간식 코너를 들른다. 동네 순찰(?) 중인 녀석을 만났다. '부스럭부스럭' 간식을 꺼내기 위해 만지작거린다. "이리 와, 만나서 반가워."멀찍이 있는 녀석과 친해지고 싶다. 마음이 통하는 걸까? 힐끗 눈을 마주치더니 모른 척 내게로 온다. 아주 비싸게 구는 녀석이다. 골목에선 네가 '짱'이다.





My way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았다. 절룩거리며 걷는다. 나무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다. 평지가 끝나는 길 오르막 언덕이다. 메세타 고원이 시작되는 곳이다. 10km 이상 그늘과 마을이 없다. 강한 햇빛의 지열은 밤이 되면 식어버린다. 줄지은 풍차들이 보인다. 구름은 솜뭉치를 엮은듯하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힘든 하루였을 어쩌면 행복했을 순례자를 응원한다.






수고했어!

800km를 걸었다. 마지막 콤포스텔라로 입성하는 길. 마지막 이어서일까? 느리게 걷는다. 무엇하나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는데 마무리해야 한다. 부러워하면 지는 건데. 가장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아지트

가을 추수가 끝난 논의 한가운데 볏짚을 성처럼 쌓이든다. 새끼줄을 엮고 한 겨울 소의 여물이 된다. 커다란 무쇠솥에 모락모락 김이 나도록 '푹'고아 낸다. 누렁이 소는 침을 흘리며 눈을 끔뻑거린다. "얘들아, 모여!"대장의 말 한마디에 동네 꼬맹이들이 향하는 곳.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무너진 터는 멋스러운 아지트로 변한다. 더미를 기어올라 다이빙도 하고 굴을 만들어 은신하기도 한다. 기억 속 우리들의 본부다.

가을의 산티아고. 가을걷이가 끝났다. 차곡차곡 쌓은 견고한 성. 개구쟁이들에게는 오르기 힘든 곳이다. 무엇 하나 빠지면 무너져 버릴 것 같다
"내 마음의 성이야말로 난골불락이었어!"




모험

흙먼지를 날리며 오토바이들이 요란하다 걷기도 불편한 산길을 어찌 왔나. 제일 높은 고개 마루에서 멈춰 섰다 일행들은 먼 곳을 응시한다. 하나ㆍ둘ㆍ셋! 굽이굽이 이어진 능선은 바다의 물결이다. 높고 낮은 골 사이로 힘찬 소리를 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몇 번의 고개를 넘어야 할지라도 방향은 잃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길이 시작된다




수줍은 해바라기

메마른 대지에 강한 햇빛이 내린다. 바라볼 수 없는 쑥스러움에 고개를 돌니다. 화려했던 시간이 멈췄다. 해바라기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다. 봄이 오면 화려하게 마른 대지에 새 옷을 입힌다. 언제 그랬냐는 듯.




클래식(Classic)

현대 문명이 발달할수록 옛것의 소중함은 절실하다 시간은 마음의 속도에 비례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느린 삶의 행복이다





「세상의 끝. 시작 ㅣ 피니스테라」 Finisterre.Santiago

산티아고 800km를 걸었다. 무언가 버리기 위해 길을 걷는다고 했다. 마음의 무거움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많았다. 양말. 슬리퍼. 충전기. 새로 산 얇은 패딩... 작은 배낭 속 물건들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짐은 갈수록 가벼워졌다. 걷는데 문제는 없다. 10월의 마지막 언저리 갈리시아 오 세이브로 고개를 넘는다. 많은 눈이 내렸다. 운동화는 금세 젖어 버렸다. 시린 발의 한기를 느낀다. 거친 호흡만큼 심장이 뛴다. 여기 있음에 소중한 시간이다. 당신의 산티아고는 무엇인가요? 지금 나의 모습






힘내!

담장 위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익숙한 자리안양 지나가는 순례잗들을 빤히 바라본다. 가까이 다가가도

"야옹" 할 뿐 무서움이 없다. 머리를 담장에 비벼댄다. 놀고 싶어 한다. 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노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어머니가 장에서 사 오셨다. 양이는 눈치도 빠르다. 사람과의 교감을 즐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확실하다. '쭈욱' 손을 뻗는다. 마음이 닿았을까?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 말 없이 손을 건넨다. "양아 고마워! 너의 위로를 기억할게!"





걷기 좋은 날

날씨가 기분을 좌우한다  흐린 날은 차분해지고  비가 내리면 왠지 술 한잔 생각난다
파란 하늘 뭉게구름. 걷기 좋은 날이다

천천히 걷다가 한 적한 곳에 앉아  흐르는 구름에 눈을 맞추고
바람이 전하는 따사로움에 마음이 열린다





루르드의 여인

성모님이 발현하신 루르드. 기적의 물이 흐르는 샘물이 있다 허름한 옷차림, 헤어진 가방

여인은 동굴의 성모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어떤 기도를 올리는 걸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간절함이 느껴진다. 말없이 굽어보는 성모님. 마음의 치유를 얻게 하소서!


여행은 경험과 비용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도보여행일지라도 그 여정을 마치고 마음속에 깊이 남는 길이었다면 진짜 여행이다.

                                                         

                                                                                                             - [여행의 본질에 대하여]




글. 사진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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