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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Jan 04. 2024

망한 이유_2

인간의 뇌는 출생 시에는 좌우로 분화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있다가 2세부터 뇌 기능이 분화되기 시작하여 12세가 되면 좌뇌와 우뇌의 특수 기능이 고정되는 뇌의 측두화(lateralization) 현상이 끝나게 된다. 따라서 12세 이후에는 뇌 기능의 대체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언어습득이 어려워진다(Maclean, 1990).


'유아언어교육' 수업을 들었을 당시에 전공서에서 위 문장을 읽고 내가 그렇게 영어가 안되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그 이유를 나의 능력이나 노력, 상황에서 찾았다면 이제야, 드디어 합리적인 핑계된 것이다. 중학교 때 처음 영어를 배우고 10년을 넘게 영어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말 한마디 못했던 나의 뇌는 이미 언어습득이 어려운 상태였다.


언어는 지식과 다르게 아이의 발달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어떤 학자는 이것 역시 학습의 원리에 따른다고 하기도 하고(스키너), 어떤 학자는 유전적인 발달의 하나로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게젤), 또 다른 학자는 태어날 때부터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 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기도 다(촘스키). 그중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학자는 '피아제'와 '비고츠키'였다. 둘은 같은 듯 다른 언어발달 이론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선 피아제는 인지발달이 언어발달을 결정짓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아이가 어떤 사물이나 상황 등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언어가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에 이러한 환경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비고츠키는 인지발달과 언어발달은 아예 뿌리가 다르다고 반박했다. 인지발달은 아이가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이 먼저 있고, 언어발달은 생각하는 것 이전에 말하는 것(의미 없는 소리)이 먼저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백일 무렵에 하는 '옹알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당대 스위스에서 최고의 심리학자였던 피아제의 이론과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비고츠키의 언어발달 이론은 꽤나 흥미롭다. 비고츠키는 아이를 사회적 존재로 바라보고, 유능한 또래나 성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언어발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아이의 실제 수준보다 높게 비계 설정을 함으로써 더 많은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비계'란 건축용어로, 높은 건축물을 지을 때 쓰이는 임시가설물로 원래의 건축물보다 더 높게, 더 넓게 지어야 한다. 즉 아이의 실제 수준보다 언어발달영역을 더 높게, 더 넓게 잡고 환경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아이의 가능성, 잠재력을 고려한 비고츠키의 이론이 마음에 들었다.


(몬테소리 교육에 이어) 비고츠키의 이론에 꽂힌 나는 비계 설정을 더 높게, 더 게 하기로 마음먹었고 쌍둥이가 6살 되는 3월에 영어유치원에 보냈다.


사실 내가 마음먹었다고 해서 영어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을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오랜 해외파견근무로 언어의 장벽을 매 순간 느꼈다는 남편은, 해외파견근무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언어는 그 환경에 놓여야 바로 습득할 수 있어. 다 커서는 그것조차 쉽지 않아. 지금 해야 돼.'라고 계속 권유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우리는 쌍둥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 2년 동안의 기회비용(여행, 취미, 옷, 신발 등) 때문에 질하게 살았다.


ABCD도 모르는 쌍둥이가 처음 영어유치원에 갔을 때는 1년을 벙어리처럼 왔다갔다만 했다. 영어유치원에서는 한국말을 철저하게 제한한다. 6살이면 한국말이 이미 유창한데 영어로만 말해야 하니 그 얼마나 답답한 노릇이었을까? 일부에서는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난 쌍둥이가 해외여행에 갔다고 생각했다. 아직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들어주는 자세 안되어 있는 5~7살 아이들에게 그렇게 물리적인 환경을 만들어놓아야만 원어민 선생님의 말을 듣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영어를 듣고만 오던 쌍둥이는 어느새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문법적 오류와 어휘의 확장은 하루에 영어책을 2~3권씩 읽으면서 차츰 수정되고 나아졌다. 마지막으로 writing(쓰기)는 사실 언어의 습득과는 별개였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쓰는 것이 한국어로도 쉽지 않듯이 영어로도 쉽지 않고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는 제대로 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므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영어는 그럭저럭 보통의 실력을 유지하게 되었으니  망했다고 볼 수 없었지만 문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일어났다. 영어로 듣고 말하는 환경이 현저하게 줄었고(영어유치원 6시간 -> 영어학원 1시간 30분) 굳이 영어로 말해야 할 필요성도 없어졌기에 쌍둥이는 영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책 읽기를 싫어하는 딸은 한글책은 거의 읽지를 않아서 문해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문해력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문장으로 된 수학문제를 얼마나 틀리는지 보면 된다. 딸은 매번 문장제만 틀렸고, 다 틀린 적도 허다했다. 오죽하면 담임선생님이 수학문장제 관련 문제집을 한 두권 풀면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까지 했을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어땠을까? 학습적인 부분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영어책만큼 한글책도 많이 읽었기에 딸보다 기대가 컸고 욕심이 났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경쟁심이 강하고 인정 욕구가 큰 아들에게 초등학교는 그야말로 정글 같은 곳이었다. 관심받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했다. 영어유치원에서 한 반의 정원은 10명 내외로 원어민 담임 선생님과 한국인 보조 선생님이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잘 알고 있고 아이의 사소한 것의 칭찬이든 문제든 바로 해결해 주었다. 반면 초등학교는 한 반의 정원이 20명이 훌쩍 넘는 데다가 담임 선생님 혼자서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눈길조차 주기 버거운 상황일 것이다. 아들에게 그런 결핍들이 문제로 나타났다. 친구들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선생님께 인정을 받으려고 한 행동들이 도가 지나칠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1년이 지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딸은 수학 문장제만 틀리, 여전히 아들은 관심과 인정에 목말라 있다. 여전히 나는 헤매고 있다. 나의 유아교육은 그렇게 망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쌍둥이의 기나긴 겨울방학이 어두컴컴한 터널의 끝이길 바라본다. 지나고 돌아보면 그 터널이 목적지로 가는 길의 한 구간이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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