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숙 Mar 05. 2024

3월, 시작

'세 번째 새해'라는 3월은 학기의 시작이다. 내가 학생일 때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도, 그날이 영영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새로운 것,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높았고 익숙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이 되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잠깐씩 드러냈다 사라지는 봄의 햇살이 두 뺨을 감쌌다가, 어디선가 불어오는 봄의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니 말이다. 그런 봄의 날씨처럼 변덕스럽지만 따뜻하고 밝은 빛을 가진 아이들이 드디어 학교에 다. 자그락거리며 지낸 겨울방학은 막을 내렸다. 2학년이 된 남매둥이는 제법 학생다워져서 전날 스스로 가방을 챙기고 개학 첫날부터 혼자 등교했다.


걱정이 됐던 건 19개월 된 막내의 어린이집 등원이었다. 혹시 안 들어가겠다고 하지 않을까? 엄마를 찾아 내내 울지 않을까? 이미 수년 전에 아이 둘을 어린이집, 유치원에 보내봤기에 덤덤할 줄 알았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다행히 막내는 언니오빠처럼 스스로 가방을 메고 (유모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등원했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 들어가 버리는 막내의 뒷모습을 보는데 괜스레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더불어 내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알아서 잘 크고 있는 막내가 대견스러웠다. 


빵집에 들러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몇 개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오랜만이라 낯설었다. 뭘 할까 했지만 뭐 할 게 없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남매둥이가 새로운 반을 잘 찾아갔을까?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막내는 울지 않고 잘 놀고 있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안고 등교전쟁으로 폐허가 된 집을 하나 둘 치우고 있는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어린이집이에요. 채원이가 잘 놀다가 현관 앞에 가서 엄마를 계속 찾네요. 첫날은 낮잠은 힘들 것 같으니까 데리러 오시겠어요?"


달려 나갔다. 벨을 누르고 어린이집 문 앞에 서있으니 막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벌게진 코를 훌쩍거리며 손을 뻗어 나에게 안겼다. 보드랍고 말랑거리고 포근한 아기 그대로였다. 아직 아기였다. 첫날부터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그렇게 했다.


"채원이 정말 잘했어! 엄마 없이도 잘 놀았네~ 그래도 조금 속상해서 울었어? 내일은 조금만 덜 울자."


알아들었는지 아무 말 없이(원래 말을 못 하지만) 내 품에 기대어 눈을 껌벅이다 잠이 들었다. 그렇게 막내는 내리 3시간을 잤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상의 전부는 엄마라는데, 그 세상이 갑자기 사라졌으니 얼마나 불안했을까? 하지만 그 시작을 통해 더 넓고 깊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리에서 기도하고, 아이가 돌아오면 안아주는 게 다이다. 부모의 덕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세상에 처음 나왔던 그때처럼 아이는 알아서 잘 클 것이다. 


나의 노력이 아니라 아이의 자생을 믿는 것, 그것으로 아이 셋을 지금 키우고 있다.


이전 15화 망한 이유_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