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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Dec 25. 2023

망한 이유_1

첫 번째 쌍둥이 교육이 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중에 하나는 내가 '몬테소리'에 꽂힌 것이다. 아이가 4살이 되면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는 훈육과 더불어 5살에 어떤 기관을 보낼 것인가이다. 통상 유치원에 가는 게 맞지만 아직도,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게 맞는지를 1년 내내 고민한다. 당시에 엄마들끼리는 유치원은 교육 중심, 어린이집은 보육 중심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엄마가 일을 하거나 생일이 늦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유치원에 보내는 게 맞다고 결론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유치원이 교육 중심이라고 해도 이제 막 5살 된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뭔가 해줄 수도 없고, 해주는 것도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고민하지는 않았지만, 보내고 싶은 유치원이 있었다. 주변에 몇몇 일반 유치원을 비롯하여 고급 유치원(?), 절(불교) 유치원, 성당 유치원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는데 그중 성당 유치원에 보내고 싶었다.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었고, 엄마가 다녔던 유치원을 딸이 다닐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했고, 유치원 안에 작은 산이 있을 정도로 자연친화적이었으며, 가장 끌렸던 점은 바로 '정통 몬테소리 교육'을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유아교육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기에 매 학기마다 서너 번은 만났던 몬테소리 교육을 직접 보고 싶었다. 몬테소리 교구를 들인 유치원은 많았지만 실제로 몬테소리 교육을 하는 유치원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유치원은 몬테소리 교육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꽤나 궁금했다.


그 몬 뭐시기 소리가 뭔가 하는 이들을 위해 잠깐 설명을 하자면, 몬테소리는 19세기말 이탈리아 최초의 여자 의사다. 그냥 사람 이름이다. 그녀가 발달장애 아동을 치료하면서 개발한 교육을 '몬테소리'라고 불렀다. 만약 내가 개발했다면,  '김민숙 교육' '김민숙 프로그램' '김민숙'이라고 불렀을 터. 특히 발달장애 아동의 '정상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몬테소리 교구는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이루어져 있었는데, 장애 아동은 물론 일반 아동에게도 일상생활과 감각, 언어, 수학 등을 발달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 교구 작업은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반복하여, 집중력을 기르고 나아가 정상적인 발달의 단계를 이룰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 뭔가 끼우고 맞추고 쌓고 하는 놀잇감들의 대부분이 이 몬테소리 교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운 좋게 1지망에 쓴 그 유치원에 쌍둥이가 당첨되었고 5살이 되어 입학을 했다. 운 나쁘게 코로나가 터지면서 제대로 간 건 서너 달이 채 안되었지만, 딸과 달리 아들은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 뭐가 그렇게 싫으냐고 물었더니, 교구 작업이 싫다고 했다. 몬테소리 교육의 꽃이나 다름없는 교구 작업을 싫다고 하다니!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교구를 선택하는데도 싫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근데 생각해 보면, 왜 교구 '놀이'가 아니라 '작업'이었을까? 궁금증이 일긴 했다. 아마도 아이가 교구를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닌 교구의 순서와 방법을 그대로 지켜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규칙과 질서를 깨닫고, 나아가 안정과 발달이루는 게 몬테소리 교육의 핵심과정이.


더군다나 교구 작업을 하기 전에 깔개를 선에 맞추는 것, 기도와 명상 등으로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것, 나의 입장이 아닌 타인과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 등은 규칙보다 자유, 조절 보다 충동, 이타 보다 이기에 더 익숙한 5살 아들에게는 모두 제약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누구나 좋다는 몬테소리 교육의 장점과 효과만 생각했지, 내 아들의 발달과 기질 고려하지 않았다. 딸은 나름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둘을 각각 다른 기관에 보낼 자신이 없었던 나는 이듬해 유치원을 옮겼다. 선택지에도 없었던, 그래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영어유치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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