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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Dec 15. 2023

엄마의 엄마

"A가 미싱한다고 하면 어떡해요? 절대 안 돼요."


딸네 반 몇몇 엄마들끼리 커피 한 잔 하자며 모이게 되었다. 입학 초에 전체 반 모임을 하고 한두 번 만난 게 전부였지만 등하교, 학원픽업 등으로 오며 가며 자주 봐서 그런지 우리는 반말반 존댓말반을 섞어가며 금세 편해졌다. 2~3시간 동안 하는 얘기라곤 애들 교육, 학원 얘기뿐이었지만. A엄마가 A가 미싱한다고 하면 어떡하냐는 말에, 나는 '미싱이 애들이 다루기엔 위험하긴 하죠. 그 다다다닥 내려오는 굵은 바늘에 손이라도 찔려봐.'라고 하려고 하던 찰나에, B엄마가 잽싸게 대꾸했다.


"아니, 미싱한다고 뭐 다 미싱사 되나? 그 미술학원에서는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옷 만들기도 그렇게 체험시켜 준대요."

"안 돼요. 괜히 그런데 재미 느끼고 그 길로 간다고 하면... 와, 나 너무 싫을 것 같아!"

"하하하~ 요즘 누가 미싱을 해? 패션디자이너라면 모를까!"


A엄마의 격한 반응에 다들 웃었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7살 겨울, 우리 가족은 갑자기 인천으로 이사를 고 엄마는 고모의 봉제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가서 미싱사로 일했냐 그것도 아니었다. 이미 베테랑 미싱사 아줌마들이 지하 1층에서 드르륵드르륵 포진해 있었고, 엄마는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어서 시다로 들어갔다.


이듬해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엄마는 입학식을 나 혼자 가라고 했다. 학교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그냥 애들을 따라가면 된다하고 출근을 해버렸다. 두리번거리며 애들을 따라 가는데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고모가 데려다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학교도 모르고, 엄마의 상황도 잘 몰랐는데 아마도 엄마는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고모의 눈치가 꽤 보였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면 공장에서 엄마가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고 옷감 쪼가리를 가지고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고모가 쓰러지셨고, 공장 문은 닫혔다. 그때까지 미싱사 아줌마들이 아무도 나가지 않아서 엄마는 결국 시다로 들어가서 시다로 나왔다. 당시 나에게 미싱사 아줌마들의 집중하는 눈빛과 빠른 손놀림이 꽤 멋져 보였는데 결국 엄마가 그 자리에 앉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쉬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미싱사의 사회적 위치와 대우를 대충 알게 되었지만 이미 사양산업으로 사라져 가고 있던 때라 내 기억에서도 사라져갔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누군가에게서 미싱사에 대한 기억이 확 끄집어내졌다. 나에게 미싱사는 평범한 엄마는 앉지 못했던 오랜 장인의 자리 같은 느낌이었는데, 다른 누군가에는 내 아이가 재미를 느껴서도 안 되는 천한 직업이라는 사실을 고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이 아려왔다.


엄마는 그 뒤로도 몇 군데 봉제공장에서 시다로 일하다가 공장이 자꾸 망해서 이어폰, 형광등, 손톱깎이 등 조립공장에서 일하다가, 건물 청소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이삿짐의 주방짐 싸는 일을 천직으로 만났는데(보수가 꽤 좋았다고 했다) 허리가 나가는 바람에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게 올해 초였고, 엄마 나이 66세였다.


어린 시절 나에게 엄마는 따뜻한 말 한마디나  한번 안 잡아주는 야멸찬 엄마였지만 그 당시에 엄마는 그럴 시간도, 그럴 마음도 갖지 못했을 만큼 궁핍했으리라. 그래도 지금 날 사랑한다고 느끼는 건 망가진 허리를 끌고 반찬을 만들어 갖다주고, 내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특히 막둥이는 어린 시절 나의 모습과 똑같아서 귀엽하다고 예뻐한다. 아마 예전에도 나를 이렇게 사랑하지 않았을까?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몰랐을 젊은 시절 엄마의 상황과 마음, 그동안 이해해 보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이건 아이를 낳아봐야 알 수 있다. 상처, 결핍, 서운함, 미안함 등이 마구 뒤섞여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는데 이제 정확하게 송곳이 되어  찌른다.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같이 아프다. 그래서 안아주고 싶고 말해주고 싶다.


고생했네,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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