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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Aug 25. 2020

2020. 08. 25 정말맑음

걸어서 태양속으로

아침부터 창 밖의 햇발이 따가워 보였다. 환기를 위해 잠시 열어놓은 창문 근처에는 뜨거운 공기가 어슬렁댔다. 오늘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지 않고  원격수업이 있는 날이다. 사실 말이 원격수업이지, EBS TV 프로그램 시청과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안내해주는 게 전부다. 그것도 재료를 구하다가 결국 못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우리는 집 근처 도매 문구점에서 마음에 드는 만들기 재료를 사서 자기 취향대로 만들며 논다.  

근데 오늘은 차가 없다. 차로 가면 5분 정도의 거리인데 걸어가 볼까? 한 번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용감하게도 이 더위에 걷겠다고 했다.  그래, 가보자. 물, 손수건, 물티슈, 소변통을 가방에 넣고 출발했다. 10시 40분.


10분도 채 안 걸었는데 주원이는 땀을 비 오듯  흘렸고, 땀이 잘 안나는 소원이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숨이 막히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마스크를 벗기고 길바닥에 앉았다. 그렇게 걷다 쉬다, 마스크를 쓰다 벗다를 반복하면서 문구점에 도착했다. 11시 20분.


40분이 걸렸다. 그래도 아이들은 안아달라고,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다. 새삼 대견스러웠고 한편으론 안쓰러워 보였다. 그 고난의 길의 끝에는 시원하고 새로운 신세계, '금메달 문구점'이 있다. 늘 그랬듯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람개비가 우리를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신나게 이것저것을 구경하고, 신중하게 몇 가지를 골랐다. 채집통, 잠자리채, 클레이, 스티커, 장난감 반지, 장난감 뱀, 마스크 줄 만들기 등을 샀더니 검은 봉지가  한가득이다. 문구점을 나오는데 아까 보다 더 따가워진 햇발에 순간 택시를 탈까 하다가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집 방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우리는 마치 태양탐사를 하는 것처럼 아무 말 없이, 태양 가까이, 걸어 들어갔다. 아, 진짜 더웠다.

  

12시 40분.

집에 도착했다. 도대체 오늘 몇 도길래 이렇게 더운 걸까?

맞다, 여름이. 한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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