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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Feb 10. 2021

2021.02.10 흐림

사랑의 매는 없다

18
욕을,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가끔 내 노력과 의지와는 다르게 상황이 잘못되었을 때, 그리고 그 책임과 비난이 나에게 돌아왔을 때 시원하게 뱉어보고는 싶었다.

어느 맘카페의 글에서 아이가 18개월부터 이후 18개월 동안까지 이 18이라는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힘이 들다고 했다. 그래서 18개월이라고. 아니다 다를까, 난 그 시기에 아들에게 처음 손을 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색연필을 오독오독 씹어먹는 아들에게, 색연필은 먹는 게 아니라고 가르쳤다가, 병원 가서 주사 맞아야 한다고 위협했다가, 막무가내로 뺏으며 소리를 질렀다가, 급기야 손으로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당시에 아들은 기저귀를 차고 있어서 아프진 않았을 텐데, 나의 고함소리와 ‘퍽’ 하는 소리가 맞물려 엄청난 공포를 가져다주었나 보다. 아들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펑펑 울었다.

문제는 그 후로 아들이 색연필을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문제가 되냐면, 이 방법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애써 달래지 않아도 아이를 말을 잘 듣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효과적이라기보다 쉬운 방법이 맞다. 그 후로 내 몸이 지칠 때나 정신없이 바쁠 때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아이의 엉덩이에 손을  다. 하지만 간혹 감정이 실릴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이의 엉덩이에 벌건 손자국이 나 있었다. 죄책감에 휩싸였고, 그런 날에는 자는 아이를 어루만지며 펑펑 울었다.

거짓말처럼 36개월이 지나자 아이는 안 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면 잘 이해했고 따라주었다. 더 이상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올해 6살이라고 하면 다 큰 것 같지만 사실 만 4세밖에 안 된 아들은 요즘 싸움놀이에 푹 빠져있다. 걸핏하면 쌍둥이 여동생을 밀치고 누르다가 급기야 피를 봤다.

“도대체 몇 번째야? 동생 얼굴이 이게 뭐야! 사람 있는데 왜 장난감을 던지니!”
“싸움놀이할 때는 원래 이렇게 던지는 거야.”
“위험하잖아. 사람 없는데서 해야지.”
“걔가 거기 있어서 다친 거지. 내가 일부러 다치게 한 건 아니야.”
“그럼 괜찮냐고 묻고, 사과부터 해야지. 동생은 아파서 울고 있는데 옆에서 신나게 놀고 있어?”
“신난 기분은 아니었어.”
“후....... 저기 벽에 가서 손 들고 서 있어. 네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봐.”
“다 아는데.”
“야!”

잘못을 한 와중에도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속이 얼마나 끓던지, 손에 있던 청소기를 바닥에 내동냉이 치고 소리를 지르면서 아들의 양쪽 팔을 세게 잡았다. 내 소리, 내 표정, 내 힘에 아들은 놀랐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 나에게 맞았던 그 날처럼.

“엄마는 지금 날 때리고 있어. 엉엉ᆢ”
“내가 언제 때렸어!”
“지금! 마음속으로 날 계속 때리고 있잖아! 어엉엉ᆢ”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정말 마음속으로 아들을 때리고 있었다. 참고 있었을 뿐, 이미 내 표정과 손은 위협적이었다. 힘이 스르륵 빠졌다. 아이를 안아주었다.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싸움 놀이할 때 조심해달라고 말하고 식탁 앞에 멍하니 앉았다.

잠시 후에 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선물이라며 그림 한 장을 내밀었다.

아까 엄마가 나를 안아주었던 모습을 그려봤다는 아이.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엄마가 화냈던 건 잊고 웃는 아이. 그러면서 자기 전에 오늘 하루 행복했다고 말하는 아이. 그런 아이를 보면서 세상에 사랑의 매는 없다고 확신이 들었다. 사랑은 온전히 '사랑' 그대로 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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