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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Feb 03. 2021

2021.02.03 맑음

부메랑

“소원아, 난 네가 싫어.”
“나도 오빠가 싫어!”
“어......? 엄마, 내가 신기한 사실을 또 발견했어. ‘싫어’라는 말도 다시 나한테 돌아와!”

얼마 전 저녁식사 중 우리 셋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건 상대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미안해’라고 말하면 ‘괜찮아’가 돌아오고, ‘고마워’라고 말하면 ‘뭘~’이 돌아오고, ‘사랑해’라고 말하면 ‘나도 사랑해’가 돌아온다.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른 말보다 유독 기분이 좋은 이유가 그것이다. 그 신기한 발견(?)에 흥분했던 것도 잊고, 아들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침부터 동생과 투닥거리더니 급기야 ‘싫어’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그리고 그 말 역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험을 하고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 있었다. 아들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고 슬프다며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어젯밤에 자꾸 매달리고 귀찮게 하는 딸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엄마가 너무 피곤하고 졸리다며, 그래서 너의 그런 행동이 싫다고 말했었다. 딸은 오빠한테 한 것처럼 그 말을 나에게 돌려주지는 않았다. 그대로 간직한 채 이내 잠이 들었다. 불현듯 미안한 마음이 들어 딸에게 물었다.

“소원아, 엄마가 어젯밤에 너한테 싫다고 한 말, 미안해. 상처 받았어?”
“응. 근데 엄마를 때리고 싶거나 죽이고 싶은 마음은 아니야.”
“어?”
“엄마가 다치거나 죽으면 우리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잖아. 아빠는 회사 가야 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어. 걱정 마.”
“그, 그래.......”

때리고 싶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라, 딸은 분노의 끝을 느껴본 걸까? 아니면 요즘 즐겨보는 신비아파트 만화나 어벤저스 영화 때문인가? 아침부터 충격에 휩싸인 나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 놓고도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직은 엄마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싫어’라는 말도 자기 기준에 따라 상처 받을지, 되돌려줄지 결정하는 여섯 살 딸의 생각과 마음이 걱정되고 한편으론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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