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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Oct 07. 2020

2020. 10. 07 깜깜

살림살이

어쩌다 우린 결혼 3년 만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당시 50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신혼살림을 꾸렸다. 결혼 전에도 가진 게 없었는데, 결혼 후에도 모은 게 없었다. 동생들 시집 장가에, 부모님 빚잔치를 치르고 나니 다시 원점이었다. 장롱, 책상, 식탁, 전기밥솥, 가스레인지, 냉장고, 세탁기, 오래된 TV. 살림살이가 그게 다였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꼭 필요한 기능만 하는 살림살이들이 꽤 마음에 들기도 했다.


이후 두 번의 이사를 더했고, 아이들이 태어났고, 남편과 다시 몇 년을 떨어져 살았다. 그 사이 우리 집에는 소파와 에어컨, 새 TV가 들어왔다. 형편이 나아지고 있었다. 희망이 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오늘, 처음 마련했던 통돌이 세탁기가  떠났다. 7~8년이면 정도 들고 아쉬울 법도 한데, 그동안 속을 꽤 썩인 터라 아무 미련이 없었다. 그 자리에 들어온 최신형 건조기와 드럼 세탁기에만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마치 만화 속 변신로봇을 보듯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비닐을 뗄까 말까 하다가 결국 떼지 못했다. 개의치 않고 윙윙윙  돌아가며 제 할 일을 하는 건조기가 꽤 멋있어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땅에 닿을까 봐 안간힘을 쓰며 이불먼지를 털어냈던  수고들이 감쪽같이 잊혀졌.


더 많은 것들이 채워지고, 더 새로운 것들로  바뀌길 바란다. 돈 때문에 포기해야 하고, 누리지 못했던 '처음'이 다시 없길 바란다. 과거의  그리움보다 현재의 설렘으로 살길 바란다. 최신형 건조기와 세탁기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이토록 간절했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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