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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Sep 04. 2021

2021. 09. 02 맑음

욕심과 포기 사이

6살 아들의 모든 시간과 공간, 심지어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인 난 정해진 루틴에 맞춰 관리하고 있다. 간혹 나 스스로 귀찮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깨끗하고 흐트러지지 않은 아이를 볼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아이 역시 잘 따라주었다.


그런데 어제는 좀 달랐다.


"씻기 싫어요. 오늘은 땀도 안 났어요. 그냥 세수만 하고 이만 닦을래요."

"샤워하고 머리 감아야 돼."

"싫어요."

"안돼."

"싫다고요."

"왜 싫은데?"

"귀찮아요."

"ᆢ 그럼, 너 마음대로 해."


더 있으면 내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낼까 봐 욕실에서 나와버렸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잠시 뒤 아들이 나왔다. 뭘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입고 있던 티는 다 젖었고 정강이 쪽에 비누거품도 조금 묻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욕실로 다시 데리고 가서 구석구석 제대로 씻기고 싶었으나 그만두었다.


"세수하고 이도 닦았어요. 발도 씻고, 똥꼬도 씻었어요."

"똥꼬?"

"아까 응가해서 비누로 닦았어요."

"응. 잘했네ᆢ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들이 대견스럽기보다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씻은 걸까? 이 안쪽까지 닦았을까, 발가락 사이사이는  문질렀을까, 똥꼬에 손이 닿지는 않을 텐데ᆢ


맙소사. 싫다. 아들이 덜 씻은 게 싫은지, 아들이 나의 손을 벗어나려는 게 싫은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조금씩 내려놔야 할 때인가. 근데 싫다.

처음으로 혼자 씻은 자신이 뿌듯했는지 아빠에게 자랑하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과연 언제까지 아들을 내 품에 두고 있으려고 이러나 싶다. 욕심내는 것보다 어려운 게 포기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이를 닦았는데 입냄새는 왜 나는 거니ㅜㅜ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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