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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Mar 24. 2021

2021. 03. 23 맑음

있는 그대로

육아의 절정은, 바로 아이를 씻길 때다. 돌 전에는 아이를 놓칠까 빠뜨릴까 노심초사하다가, 그 이후에는 아이가 씻기를 거부하거나 오랫동안 나올 생각을 안 해서 실랑이를 벌였다. 잠들기 전, 나도 개운하게 씻고 편안하게 눕고 싶은데 늘 땀범벅으로 잠들지 않는 아이들을 어떻게 재울까 고군분투했던 그 시간이 참 힘들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아들은 이상하리만치 얌전해졌다. 가만히 서서 몸을 내주어 어딜 덜 씻겼나 싶을 정도로 후딱 끝났다. 그리고 내가 비누칠에 열중할 때면, 아들은 종종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난 조셉처럼 되고 싶어. 조셉은 멋지거든!”
“어? 뭐가 멋진데?”
“다 멋져. 그냥 다. 놀리는 모습까지.”
“그래? 엄마는 주원이가 더 멋진데~”

“아니야. 조셉이 더 멋져. 근데 이 얘기는 선생님이랑 조셉한테 말하면 안 돼.”
“어~ 알겠어.”

아들의 그 마음이 귀여우면서도 엄마로서는 살짝 안타까웠다. 나는 늘 아들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본인은 다른 친구를 부러워하고 있으니 엄마의 욕심인지, 기대인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매 학기마다 꼭 한 번 씩은 나왔던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가 떠올랐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의 ‘심리 성적 발달 단계’를 환경적 영향까지 고려하여 인간발달을 성인기까지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 -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된 정체성의 발견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하지현)

지금 아들은 3단계 ‘주도성 대 죄의식’의 단계에 와 있다. 또래들과 경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동안 아이의 주도성이 길러지는 시기다.  딱 봐도 유치원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조셉이라는 친구인 것 같다. 그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그 친구처럼 되고 싶다는 나의 평범한 아들. 난 그 경쟁심과 열등감에 짓눌려 힘들었는데, 아들은 친구를 있는 그대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그런 내 아이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씁쓸해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필요한데, 내 마음은 왜 그렇지 못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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