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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May 16. 2022

2022. 05. 16 맑음

심리검사

“어머님, 주원이가 놀이방에서 가장 먼저 집은 놀잇감이 뭔지 아세요? 바로 다트예요. 그러면서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선생님, 여기 노란색 동그라미를 맞춰야 100점이에요.’ 몇 번 시도하다가 다음에는 화살을 집더라고요. 다트, 화살. 결과가 바로 나오고 점수, 등수가 명확하게 보이는 놀잇감이죠. 목표 지향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그리고 말랑말랑한 인형을 안고 텐트 속으로 들어갔어요. 경쟁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는 마음도 있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병사 인형들을 가지고 놀더니, 나중에는 모두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주원이 내면의 좌절감을 나타내요. 놀이 관찰에서 주원이의 내면이 극명하게 드러나서 사실 다른 면접, 그림 심리검사, 기질 및 성격 검사는 볼 필요도 없었어요. 근데 다른 결과 역시 비슷하게 맞네요. 주원이는 자신이 잘해야만 인정받고 사랑받는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감 및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고, 유능감에 손상이 있어 보여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타인의 평가에 많이 휘둘릴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하기 어려워 보여요. 장기적인 상담 및 치료를 권유드립니다.”

충격적인 심리검사의 결과. 아빠의 출장 기간 동안 잦은 울음과 불안으로 제대로 자지 못했던 소원이 때문에 간 것이었는데, 오히려 소원이는 정상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주원이의 결과에 머리가 멍했다. 도대체 왜? 언제부터?

일요일 오후, 공원에 가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자는 소원이의 제안에도 주원이는 싫다고 했다. 할머니네 가서 쉬고 싶다고 했다. 주원이에게 할머니는 말랑말랑한 인형이고, 할머니의 집은 텐트 같은 공간인  했다. 예전 같았으면 갖은 회유와 협박으로 데리고 갔겠지만 그냥 그러라고 했다. 심지어 혼자 가겠다고 해서 할머니네 아파트 입구 비밀번호, 할머니네 집 비밀번호를 종이에 적어주었다. 나는 멀리서, 주원이 모르게 따라갔다. 횡단보도도 무사히 건넜고, 비밀번호도 잘 누르고 들어갔다.

뒤돌아 다시 오는데 발걸음이, 내 마음이 무거웠다. 왜 나는 주원이의  되지 못한 걸까? 공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소원이가 즐겁게 재잘거리는 소리는 점점 희미해지는데 주원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은 또렷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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