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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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러, 즉 상경을 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도시가 주는 피로감’이라는 게 있다. 내가 이것에 대해 주변인들에게 이야기하면, 절반은 이해하고 나머지 절반은 이해하지 못한다. ‘난 살면서 그런 거 한 번도 못 느껴 봤는데?’라는 말이 되돌아오기도 한다.
높다란 건물에 휩싸여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다른 세계에 잘못 들어와서 길을 잃은 기분이랄까. 게임 속이라면 이런 기분이 평생 들 것만 같아 갑자기 숨이 막힌다.
내가 이 기분을 처음 느낀 건, 지극히 평범한 순간이었다. 날씨가 좋았던 5월, 대학교 수업이 끝난 뒤 남산을 배경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고 역 근처에서는 이제 막 저녁이나 술 약속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새내기였던 나는 학교 주변 지리를 익히는 데 한참 몰두하고 있었고, 홀린 듯 명동, 을지로까지 쭉 걸어가 보았다. 빽빽한 빌딩과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는 외국인들, 정신없이 얽힌 버스 그리고 드넓은 도로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도저히 틈이나 공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이었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 당시에는 대체 무슨 기분인지 정의할 수 없었는데,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 찝찝한 기분은 자취방에 돌아와서도 유지되었다. 내가 앉아있던 싱글 사이즈보다 작은 매트리스와 어두컴컴한 형광등, 3평 남짓 되는 방을 꽉 채우는 18,000원짜리 스탠드 조명 이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빌려온 것만 같았다. 결국 그날 새벽 내내 노트북으로 예능을 몰아보고 나서야 현실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기분을 ‘피로감’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나를 침체시키고, 해소하려면 일부러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기 때문에.
그 피로감은 불청객처럼 때때로, 불쑥 찾아왔다. 첫 직장 퇴근길에서, 친구들과 난리법석을 치며 함께 걷던 강남 한복판에서, 회사 점심시간에 한강 산책을 나왔을 때, 지하철에서 우연히 빛나는 동호대교 뷰를 발견했을 때 등등… 수 없이 많은 순간에 찾아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주로 ‘센티’해진다는 새벽이나 한밤중이 아닌, 해가 쨍쨍한 맑은 오후나 노을이 예쁘게 지는 날에 유독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날씨나 사람, 모두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순간이었다.
왜 고향에 있었을 땐 이런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바다가 잘 보이고 그렇게 높은 건물이 없고 뭔가 세련되지 못한 촌스러운 우리 동네에서 말이다. 고3 때까진 답답해서 탈출하고 싶었던 곳이었고, 20대 초반에는 놀거리가 없다며, 굳이 그 먼 시내까지 버스까지 타고 나가서 유흥이 범람하는 분위기를 즐겼다.
그런데 지금은? 고향에 내려가면 원래 거기 있었던 가구 마냥 집에 조용히 박혀있다. 엄마가 해주는 밥, 가끔 싸움으로 번지는 잔소리, 심지어 시원한 가족의 방귀 소리마저도 놓칠세라 하나하나 내 눈과 귀에 수집한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모두 지참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요즘은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내가 지방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모른다. 만약 촌스럽기 짝이 없던 지방러가 어느 순간 티가 안 난다는 건, 그만큼 서울살이에 찌들고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부끄러워서 티도 못 냈던 눈 뜨고 코 베인 사건, 이 악물고 고쳤던 사투리와 억양, 문화생활과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억지로 결제한 전시회-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거죽을 입기 위해 피부를 벗겨내는 과정들이다.
학창 시절 땐 높은 하이힐을 신고 또각거리며 왼손엔 커피, 오른손에 서류철을 안고 커리어 우먼 면모를 뽐내는 것이 꿈이었다면 이젠 가까이만 있다면 고향집 베란다에서 바다 멍을 때리다가 잠들고 싶다. 이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도심 속에서 가끔 시몬 빵이나 쫀디기를 사 들고 불 꺼진 자취방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렇게 피로감을 이겨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