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우울하기

by 수현

사람들에게 ‘작정하고 우울’할 시간이 공식적으로 필요하다. 널브러져 있다가도 다음날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관성에 의해 억지로 루틴을 시작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기 때문에.


가끔 하루 종일 청승맞게 슬픈 노래를 듣고 슬픈 영상을 보며 꾀죄죄한 몰골로 내 감정에 몰입하고픈 시간이 간절할 때가 있다.


그마저도 시계를 본 뒤 ‘지금 자면 얼마큼 잘 수 있지’ 하며 눈물을 닦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잠이 오지 않으면 즐겁고 밝았던 기억을 몇 개 꺼내서 쳐져있는 기분을 애써 재부팅한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뜨면 잠시 감정을 보류하지만 갑자기 툭툭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수로에 진흙이 가득 쌓인 것 마냥 억눌린 것들이 배출되지 못한 채 고여 있다가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터져 나올 날들이 생긴다. 그날은 하루가 힘들다. 사소한 말과 행동에 마음이 베이고 울컥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삼키느라 목젖이 아플 정도다.


결국 술 한 잔과 함께 누군가를 붙잡고 울고 있는 날에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다들 저마다 사연을 하나둘씩 꺼낸다. 사람들에게 그늘이 있는 건 너무 슬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듣고 있다 보면 결국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각자의 그늘이 있어서였다.


나도 괴롭지만 그런 사연을 듣고 있다 보면 참 애처롭다. 좋기만 해도 부족한 날들인데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할까. 아니면 관문처럼 성장과 배움을 위해 겪어야만 하는 시기인 걸까.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작정하고 우울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지내다가도 문득 찾아오고 피할 수 없는 그 무거운 마음을, 이겨내려고 하기보단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느끼고, 그게 상대방이라면 멀리서 바라봐주면서 내버려 두는 것.


그렇기에 오늘도 나를 포함해서, 하루를 잘 견디고 있는 내 사람들이 편안하게 잘 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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