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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un 12. 2024

일본인 3명과의 미국 교환학생 생활


4인 1실이었던 우리 학교의 기숙사.

들어가자마자 거실과 주방이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방 안에 책상이 없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식탁 겸 주방이 모두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공부를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밥을 먹거나 할 때 모두 한 공간에서 함께 해야 한다.


대학에 진학하고 교환학생을 오기 전까지 서울의 한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했다. 대학 1학년 때 잠깐 거주했던 학교 기숙사는 2인 1실이었다. 그니까 한 아파트에 4명은 처음이었다. 4인 1실, 처음에는 역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샤워를 하는 시간, 청소 분담, 휴지 등의 공용 물건 구입, 그리고 요리를 하는 타이밍 등등. 오기 직전까지 혼자 살았던 탓인지 그 불편함이 배가 되어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불편함은 무색하게 그 생활에 적응해 갔다. 서로서로 배려를 하며 살았다. 눈치껏 살았다.






4인 1실. 그 4명 중 나 빼고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일본인이다. 서로의 문화와 생각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은 덕분인지 지내는 데 불편함은 딱히 없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영어가 늘지 않을까 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서로가 제2외국어로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같은' 입장임을 잘 이해하고, 말문이 막힐 때는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에서 나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룸메이트와의 갈등은 필연적이라고 느낀다. 매일 살을 부대끼고 살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일을 어느 날에는 예민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룸메이트와 갈등을 빚게 되었을 때 가장 불편한 점은 역시 '계속 마주쳐야 한다'는 점이다.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는 채로 좁은 방에서 함께 잠이 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관계 속에서 대화는 정말 중요하다. 너무나 간단한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특히 나의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려울 때, 그 중요성은 배가 된다. 제2외국어로 내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그랬다. 서툰 대화일지라도 나의 생각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어쨌든 우리는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계속 봐야 하는 관계 속에서 미움이 남아있는 채로 방치한다면, '신경 안 쓰고 말지'라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갉아먹는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되지 못한 일은 뇌 속에 더 오래 남아 나를 괴롭힌다.



관계를 유지하거나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지난 학기부터 함께 생활하면서 이미 친해져 있는 일본인 룸메이트들과 지내기에는 역시 어려움이 컸다. 먼저 나는 일본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들의 관계에 내가 뒤늦게 낀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원체 먼저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성격이다.


어색한 분위기, 아직은 익숙지 않은 환경과 영어. 처음에는 내성적인 나의 탓인가 하여 방에 잘 들어가지 않았고, 억지로 말 한마디 더 걸어본 적도 있었다. 더 많이 마주치면 더 많이 대화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특히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정말 아까웠고,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말을 먼저 걸어야만 했으며, 특히 미국인 친구를 만들어야'만' 했다.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나랑 안 맞는 사람도 있는 거다. 나의 온도와 안 맞는 사람에게 억지로 맞추려는 것은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교환학생이라는 환경이 '나'를 쉽게 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 나와 맞는 사람이 있지. 이걸 깨닫고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히려 더 쉽고 편안하게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룸메이트들과도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나의 방식에 맞지 않게 억지로 만들어낸 행동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내가 관계를 대하는 방식, 갈등을 관리하는 방법, 나의 인간관계 스타일..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학기 후반에는 그 편안함이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도, 교양 수업에서 많은 친구들과 대화를 한 날에도, 미국인 친구와 밥을 먹고 수다를 떤 날에도. 모두 그냥 편안해졌다. 이제 점점 적응해 가나 보다.



- 학기 후반에 작성한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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