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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Jan 05. 2022

12월 2주 차

착안하다 

착안하다 : 어떤 일을 주의하여 보다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잡다



 숫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어쩌면 세상은 숫자로만 가득한 것은 아닐까 싶어 말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모든 글자도 사실 0과 1로 기록되는 것처럼 우리가 보는 것, 말하는 것, 만지는 것, 느끼는 것 모든 것 역시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런 생각. 바라보는 물건, 먹는 음식은 얼마인지, 듣는 음악은 몇 곡인지, 느끼는 감정은 언제인지. 위치마저 숫자로 기록할 수 있는 그런 세상. 과연 숫자는 세상을 이롭게 한 것인지 혹은 숫자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또 언어는 몰라도 숫자만 안다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한 호기심까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숫자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고 생각도 해봤다. 물건을 보면 그 촉감을, 음식을 먹으면 식감을, 음악을 들으면 리듬을, 감정을 느끼면 그 감정 자체를. 물질의 본질은 숫자 뒤에 있어 우리는 번번이 놓치는 것 같다. 좋은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의 좋음이 아닌 가격표를 보고 결정하는 것처럼. 물건의 본질에 착안해 숫자를 세워놨는데, 숫자에 착안해 물건의 본질을 판단하는 그런 습관들. 그렇지만 우리가 숫자로 본질을 가린 것이다.

3달러에 샀던 한 스케치가 알고 보니 3만 달러의 값어치를 가진 물건이다와 같은 기사를 읽게 되면 구매자는 본질을 본 것이고 기자는 숫자를 본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판매자는 본질을 보는 눈을 잃고는 숫자를 적어놓았고. 일말의 가능성은 구매자 역시 본질보다 값을 보고 샀지만 그 본질이 본색을 드러내자 엄청난 숫자로 바뀐 것이기도 할 수도 있다. 결국은 돈으로 흐르는 것 같다.


 숫자에 민감해진 것은 돈에 의해서 아닐까. 무엇이든 돈이라는 말처럼, 숫자가 만든 돈은 무엇이든 이어지기 때문에 돈에 민감해졌고, 돈을 만든 숫자에도 민감해졌다. 물물교환 하던 시기에 사람들이 과연 숫자에 민감했을까. 또 최근 뉴스에서 본 빨래 클립으로 물물교환을 해 결국 집을 살 수 있게 된 여성의 사례를 보며 우리가 숫자를 보지 않으면 본질을 파악한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몇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한 시간에는 얼마만큼의 돈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돈과 시간, 숫자와 숫자가 연결되면서 숫자가 그리고 돈이 우리를 잡아먹은 것이다. 무엇을 하려면 얼마가 필요해보다 무엇을 하면 얼마를 벌 수 있어가 더 커진 세상 말이다.


 꼭 돈이 아니어도 숫자는 이미 세계를 지배했다. 오늘이 몇 일인지나 오늘 기온은 어느 정도인지, 지금은 몇 시인지. 또 기호 1번인지 2번인지에 따라 편을 가르기도 하고, 키나 몸무게가 어느 정도인지에 민감하게 대응하곤 한다. 다 숫자로 인한 콤플렉스. 


 글을 쓰는 나 역시 숫자에 아주 민감하다. 한 해가 시작하며 나이가 한 살 많아진 것을 시작해 크지 않은 키는 별 수 없지만 몸무게가 변하면 그에 민감해 식단을 조절하게 된다던가, 물건을 볼 때는 개인적인 예상 값어치와 비교해 구매를 하고 주어진 돈을 가지고 어떻게 살지, 무엇을 할지 결정하게 된다. 일을 하러 나가는 시간은 8시 8분이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6시 30분이다. 버스는 8시 13분에 오고 이를 위해 매일 같은 시간 알람을 끄고 시계를 보며 씻고 준비하며 나간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씻고 잘 준비를 해 12시가 되기 전에 잠에 든다. 내가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동시에 그 모든 것이 숫자로 정의된다는 것은 놀랍다. 숫자가 없어도 내가 하는 행동의 90% 이상은 똑같을 것인데 말이다. 그만큼 인간 삶에 숫자는 깊숙이 침투했으며 사실상 인간은 숫자에 의해 지배된 것 같기도 하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숫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작은 노력들이 있었다면, 몸무게는 보지 않고 거울로만 몸을 판단하고, 알람에 의존하지 않고 눈을 스스로 뜨는 것. 이런 노력들은 날 조금 더 숫자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긴 할까 또 의문이다. 


 숫자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숫자는 우리 삶을 정돈을 줬다. 숫자 없이는 감각과 경험에 의존해야 하지만 숫자의 등장으로 체계화되었다. 그 덕에 불편함이 많이 사라지고 숫자에 맞춘다면 어려움 없이 많은 것들을 해나갈 수 있으니. 그렇지만 문자대로 ‘숫자에 맞추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숫자 앞에는 행동, 물건, 감정 등이 있다. 숫자는 돕는 것이지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숫자에 지배당하지 말고 숫자의 도움만 받아라. 내 눈앞에 있는 숫자의 본질을 알고 그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처럼 이면에 있는 것이 어떤지에 대한 판단을 하고서야 눈앞의 숫자도 나에게 의미를 갖는 것이다. 숫자를 보면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또 숫자에 지배당하면 우리는 스스로 자유를 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면서 일차적으로 하나의 울타리를 만들어냈다. 자유는 그 안에서 축소되어 주어졌고, 큰 사회 속에 작은 사회를 여럿 만들었다. 인간은 여러 작은 사회에 속하며 많은 일을 해 나가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자유를 더 작은 틀로 제한하기 시작했는데 숫자에 맞춰 사는 우리가 또 한 번 그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는 스스로 정하고 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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