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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10. 2015

학교 상담, 입에 쓴 약 보약으로 활용하기

- 초등학교 선생님 만나기

두 아이를 기르며 13분의 담임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 공부하고 선생님이 되었을 텐데도 선생님들의 교육관이나 아이들을 다루는 모습은 한분 한분이 모두 달랐습니다. 여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또 만나다 보니, 약간의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오늘은 이 깨달음을 적어볼까 합니다. 


선생님의 전문적인 평가와 조언은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 아이만 알고 있는 대부분의 부모들보다 많은 아이들을 동시에 접하는 선생님의 시각이 객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객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부모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지는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부분을 집어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선생님들도 부모가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부모가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껴지면, (정말 문제가 많은 아이가 아닌 경우) 길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열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누구나 듣기 좋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났다면, 마음 한쪽에서 피어오르는 불편함과 거부감을 살짝 누르고 일단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어디서도 못 사는, 금쪽같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선생님은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자, 아이에 대해 어머니가 먼저 말해 보세요.’라는 말로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학년 초 봄 상담에서는 아이를 파악하기 위해 부모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공격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분위기에 좀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어찌 되었든 준비했던 대로 집 안에서의 아이의 모습, 아이에 대해 평소 제가 느낀 점들, 아이가 잘하는 점, 부족한 점 등등 이야기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후 선생님은 ‘그래도 어머니는 아이에 대해 좀 알고 계시군요’라며 태도를 확 바꾸었습니다. 경력 30년이  되는 이 분은 ‘요즘 엄마들은 자기 아이에 대해 너무 모른다, 모르는데 들으려고도 안 한다, 엄마를 보면 대부분 아이를 알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을 30분이 넘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희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 선생님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말을 너무 막 한다는 것이 불만의 핵심이었지요. 숙제를 안 해오거나 수업 중 해야 할 것을 다 못한 경우 방과 후에 남아서 하고 가도록 했는데 이 점도 많이들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엄격하긴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강점을 북돋아주셨고 일 년 내내 상담했던 내용을 기억하고 부족했던 부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아낌없이 칭찬을 퍼부어 아이를 신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이야기가 모두 정답은 아닙니다. 때로는 부모가 선생님의 이야기를 판단해서 받아들여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선생님이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아이가 너무 나대는 게 ADHD가 의심된다며 병원 상담을 받아보라는 이야기나 이대로 자라면 반사회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상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실제 상담 이야기는 엄마들 사이에 급속도로 펴지며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입니다. 아이는 몰입력이 좋은 편입니다. 특히 좋아하는 책을 볼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누가 부르는지도 모르고 빠져듭니다. 학교에서도 종종 그랬나 봅니다. 쉬는 시간에 펴든 책을 수업이 시작해서도 덮지 않고 선생님이 몇 번이나 불러도 못 듣고 책만 보았답니다. 심지어는 수업 중에 몰래 교과서 밑에 있는 책을 계속 보다가 걸렸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아예 책금지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아이가 전하지 않아서 상담을 가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입니다. 


상담을 끝내고 와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전후 사정을 물어보니,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합니다.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잘못했다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립니다. 선생님이 너는 책을 아예 읽지 말라고 하셔서 옆 짝꿍이 보는 책을 들여다보면 짝꿍이 못 보게 가려서 속이 많이 상했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제 눈에도 눈물이 맺힙니다. 이 작은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면 속이 몹시 상했지만 같이 울 수만은 없었습니다. 책 읽는 것은 좋지만 어느 정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선생님 말씀도 분명 맞습니다. 정말 속상 했겠구나, 꼭 끌어안고 달래 준 후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속상했던 마음을 다 털어놓고 난 아이는 의젓하게 말했습니다. 책 보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수업이 시작했는데 선생님을 쳐다보지 않고 책만 본 저도 잘못했다, 선생님은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가르쳐야 하니까 여러 번 말을 듣지 않는 저에게 화를 내신 것 같다고요. 쉬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책을 보다 덮으려면 너무 아쉬우니까 쉬는 시간 10분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친구랑 수다를 떨고, 대신 점심시간에는 마음껏 책을 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수업이 시작하면 자신을 불러달라고 미리 말해놓겠다고 해결책도 제시합니다. 


다음 날 선생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아이의 결심도 전하고 지켜봐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 다시 선생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요즘은 책 때문에 속 썩이진 않나요?’ 요즘은 아주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업이 시작되면 주변 친구들이 모두 ‘**야, 수업 시작했어. 빨리 책 덮어.’ 하고 알려준답니다. 좀 시끄럽긴 하지만 무슨 책이 그렇게 재미있냐고 물어보는 친구도 생겼다고, 덕분에 책 읽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작은 아이는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절제력’이라는 아주 소중한 항목을 배웠습니다.  


책 읽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책을 너무 많이 보는데 친구를 못 사귀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은 아이의 사회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니냐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던 저희에겐 좀 충격적인 소리였지요. 저는 그 이야기를 아이에게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많이 제공해 주라는 조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했습니다. 지금 그 아이는 책 읽기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회성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말은 틀렸지만 사회성을 길러야 할 시기라는 조언은 시기 적절했습니다. 


정신없는 아이의 책상 서랍을 보여주며 정리정돈을 못하는 아이는 머릿속도 그렇다고 단언하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사실은 주변이 정리되지 않으면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지만 어지러운 주변 상황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마 선생님은 전자의 유형이시겠지요. 그 반 교실은 유난히 깔끔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런 유형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걱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저와 너무 다른 큰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성격유형 공부를 시작했을까요. 그 날은 아이와 사람의 기질과 효율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의 걱정도 전달했지요. 아이는 선생님이 너무 유난을 떨고 주변정돈이 안 끝나면 집에도 못 가게 하신다고 투덜대긴 했지만 학교에선 어느 정도 정돈이 되어 있는 것이 편리하다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또 그 점만 빼면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니까 선생님 맘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정리를 하겠답니다. 대신 집에서 자기 책상 위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 잔소리하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엄마 맘도 편하게 해 줄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자기 맘을 편하게 해 달라나요. 


요즘도 저희 집 네 개의 책상 중 큰 아이의 책상이 가장 복잡합니다. 본인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은 다 알고 공부에 전혀 문제가 없다니 저도 그렇게 믿으려 노력 중입니다. 아이가 책상과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길 원하는 것은 아이를 걱정하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은 제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제 마음이 어지럽다 느껴지면 얼른 아이 방문을 닫고 부엌과 제 책상을 열심히 정리하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습니다.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아이를 학대하거나 문제가 심각한 선생님의 모습을 접하면 분개하고 혀를 차는 동시에 우리 아이가 저런 나쁜 선생님을 만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됩니다. 아이 학급에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선생님의 자질에 대한 우려나 비판이 엄마들 카톡방을 떠돌기도 합니다. 


저희는 아이 앞에서 먼저 선생님 험담을 하거나 흉을 보지는 않지만 아이가 선생님에 대해 불평할 때 아이의 말을 자르거나 막지는 않습니다. 아이의 편을 들어 같이 흥분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아이의 입장에서 왜 화가 났는지 듣습니다.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불만은 어느 정도 가라앉습니다. 아이의 불만이 좀 누그러든 후에는 어른의 입장, 선생님의 의도를 아이와 함께 추측해 봅니다. 


“네가 선생님이라면 오늘 어땠을 것 같아? 엄마는 선생님처럼 화가 났을 것 같기도 해. 그런데 선생님이 욕을 하신 건 좀 그렇긴 하다, 그치?” 


저는 선생님이 사명감이 없이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직업이라고 굳게 믿지만 동시에 모든 선생님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어느 집단이라도 100%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릴수록 선생님의 이야기는 절대적이었지만 아이가 커질수록 선생님이나 학교에 대한 불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선생님과 학교만이 아니라, 부모와 사회 모두 불만과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도 성장의 과정입니다. 아이의 이해 단계에 맞추어 학교를 포함한 ‘조직’에 대해, 그리고 선생님을 포함한 ‘직업’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은 부모의 몫입니다. 


다행히 큰아이는 모든 사람의 집단에는 ‘소수의 아주 좋은 사람, 대부분의 보통사람, 소수의 아주 나쁜 사람’ 이 있다는 설명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기복이 있지만 특별히 나쁜 상황이 아닌 경우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또 다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엄마, 아빠도 보통의 평범한 부모지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아이를 이해시키는 동시에 저도 이렇게 이해하려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수의 아주 나쁜 선생님’을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아이의 불평과 불만이 타당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경우 직접 학교에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흥분하기 보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 정도의 표현으로 전화를 하면 적당합니다. 괜히 다른 엄마들이나 아이들에게 물어본다고 이리저리 전화하고 오해를 키우기 보다는 아이가 없는 곳에서 선생님께 직접 설명을 부탁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직접 방문을 하거나, 편지나 메일로 간략하지만 분명하게 부모의 입장을 밝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일기 숙제를 검사한 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모두 앞에서 이름을 부르고 숙제 검사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방법을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많은 양을 자세히 잘 썼다고 다른 아이의 일기를 공개적으로 읽어주고 칭찬해주는 것까지는 선생님의 판단에 맡길 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짧지만 정중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앞으로 글씨를 좀 더 성의껏 쓸 수 있도록 집에서도 돕겠지만 일기 내용에 대해서는 아이를 혼내지 말아 달라고, 그동안 아이가 쓰고 싶은 내용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일기라고 가르쳤고 앞으로도 그렇게 했으면 한다고요. 사실 선생님의 반응에 따라 앞으로 일기 숙제를 제출하지 않을 결심까지 하고 보낸 편지였지만 선생님 답신은 간단했습니다. 잘 알겠다고요. 그 후 아이의 일기장은 도장이 찍혀 돌아왔습니다. 일기에 달아주는 선생님 코멘트는 사라졌지만 다른 숙제에 대해서는 그 전과 비슷하게 해주셨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부모와 가장 가까운 곳에 아이를 키우는 분은 바로 우리 담임선생님들입니다. 학교 상담에서 늘 새롭거나 좋은 이야기만 듣고 온 것은 아니지만 늘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인사로 아이에게 변화가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연락 주시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옵니다. 학교에 다녀오는 봄, 가을의 하루는 항상 아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어떻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감사한 시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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