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상담, 가치관 재점검의 기회
초등학교 상담과 중학교 상담은 많이 다릅니다.
초등학교 상담에서는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교우관계가 주된 주제가 되고 부수적으로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좀 빠른 아이는 4학년, 대부분의 경우 5학년 정도가 되면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한 화제입니다.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니만큼 아이들의 변화와 그로 인한 친구 문제 등이 선생님과 부모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물론 공부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라면 우선순위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이런 아이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학습태도나 집중력 등 아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아이의 습관이나 생활을 잡아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신체적·정신적·사회적·정서적 또 지적으로 균형된 성장·발달을 목표로 하는 초등교육의 지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학교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시험도 많이 보지 않고 성적표를 서술형으로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 못하면 대학 못 간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으름장을 놓는 선생님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적어도 아이들의 ‘등수’를 매기고 붙이지 않습니다. 엄마들도 선생님에게 내 아이가 ‘몇 등’인지 물어보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상담은 그래서 맘이 편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교는 분위기부터 다릅니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성적표에서 등수가 사라진지는 몇 년이 되었지만 성적에 대한 민감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학교 선생님들은 성적표가 나가면 자녀의 등수를 물어보는 학부모 전화에 귀찮기만 하다고 합니다. 등수를 알려주면 본인이 잘린다는 핑계를 대며 절대 알려주지 않는 선생님도 있지만 아예 성적표에 전교 등수, 반등수를 적어서 나눠주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중학교 선생님과 일대일로 만나면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성적입니다. 그러고 나서야 학교생활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중학교 1학년 봄, 가정통신문에 따라 상담 신청을 했더니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아직 아이에 대해 파악한 것이 없다고, 지금까지는 학교생활 잘 하고 있으니 안 오셔도 된다고 합니다. 학부모 총회 때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치른 진단평가 점수와 등수를 알려주셨습니다. 대부분 학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건 성적이란 뜻일까요? 사실은 좀 당황했습니다. 전반적인 학교 분위기가 이런 것인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담임선생님을 좋아했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종례를 빨리 끝내주시고 간식도 잘 사주시고 평소에는 잘 웃으시지만 무서울 땐 아주 무서우셔서 말썽쟁이 남자 아이들도 담임샘 말씀은 잘 듣는다구요.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는 다섯 명의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이 그나마 담임선생님을 무서워해서 반 분위기가 엉망이 되지는 않는다던 아이는 담임선생님과 일 년을 잘 보냈습니다. 가을 상담에서 만난 선생님은 담당인 체육시간에 아이를 보면 매사 참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밝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으니 성적도 점차 오르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덕택에 엄마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2학년 학부모 총회에서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아이가 처음 만나는 시련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7년 동안 만났던 아이의 이전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해야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아이의 투덜거림과 불평을 공감하며 들을 수 있었습니다.
큰아이는 종종 담임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안들에 대한 엄마 아빠의 생각을 묻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희 집 식탁 화제가 훨씬 풍성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폴리스라인을 지키지 않은 세월호 시위가 불법시위인가에 대한 토론은 ‘악법도 법인가’를 거쳐서 윤봉길 의사가 테러리스트인지, IRA와 평화협정까지 뻗어나갔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아이는 신문 읽기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름방학에는 스스로 NIE (신문 활용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하기도 했으니, 모든 것에 나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거쳐 어느새 2학기가 되었고 상담기간이 돌아왔습니다.
중학교 상담 신청용지에는 담임선생님 외에도 ‘교과목’과 ‘기타’ 선생님 상담 신청 부분이 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 유명 무실한 부분인 것 같았지만 저는 용감하게도 담임선생님과 수학선생님 두 분께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저희 아이는 혼자 공부를 하는데 이해가 안 가거나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수학을 어려워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야 제가 도와주기도 했는데, 중학교 올라가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정규 수업시간에는 진도를 나가야 하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데 혼자 이해가 안 간다고 다시 질문을 하기는 싫다고 하더군요. 제 기억을 되살려 수업이 끝난 후 쉬는 시간은 어떠냐고 물으니, 나가시는 선생님을 붙들고 물어보기엔 선생님도 바쁘고 저도 이동수업이 많아서 힘들다고 합니다. 모르는 것은 교무실로 찾아가서라도 알고 넘어가라고 아이를 다그치는 것은 부모의 욕심일 뿐이겠지요. 고민하던 우리가 찾은 대안은 방과후 교실입니다.
중학교도 초등학교처럼 방과후 교실을 운영합니다. 초등학교처럼 종류가 다양하지도 않고 호응이 높지는 않지만 어쨌든 분기별로, 또는 학기별로 신청을 받고 운영을 합니다. 축구, 농구, 밴드, 모듬북, 통기타, 기초 일본어 회화 같은 특기적성반도 있고 영어, 국어, 수학, 과학 같은 교과학습반도 있습니다. 교과목반 중 다른 과목들은 툭하면 폐강되지만 다행히 수학은 아직까지는 살아 있습니다. 덕분에 큰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1시간 30분씩 방과후 수업을 듣습니다. 교과 담당 선생님이 학교 진도에 맞추어 준비해 오신 프린트물을 함께 풀어본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가져온 것 외에 다른 문제를 질문하기도 편하다고 좋아합니다.
방과후 수업에 대해서 평소에 궁금했기에 수학선생님 상담을 신청했는데 수학선생님은 1학기 공개수업에 홀로 참가했던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방과후 다른 교과목들은 최소 개설 인원인 열 명이 안 돼서 폐강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학 과목은 그나마 열 명 내외가 늘 신청해서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동네가 소득 차이가 커서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은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는 것 같고 자녀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는 부모들은 이런 방과후 수업이 있는지도 모르실 거라고 씁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학년 240명의 학생들 중 신청인원 열 명을 채우기 어려운 것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나마 부모님이 억지로 신청을 한 경우가 많은지, 출석율도 떨어지고 엎드려 자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열 명 중 서너 명의 아이들만 열심히 문제를 풀고 질문도 한답니다. 선생님은 아마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하셨습니다. 아이가 학원에 가 있는 시간이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과 결국 왜 자신이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학원을 가거나 학교에 있거나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저도 공감했습니다. 수학선생님은 수학에 자신이 없는 저희 아이를 위해서 실질적인 조언도 많이 해 주셨습니다.
2018년도 수능부터 영어가 절대평가화 되면 수학의 비중이 더 높아질 거라 벌써부터 야단입니다. 지금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부터는 수학 점수로 대학이 결정된다고 수학학원마다 홍보에 열심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른들의 극성과는 관계없이 최근의 한 설문조사*에서 중학교 3학년 2755명 중 1272명, 무려 46%의 학생들이 이미 수학을 포기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동일한 설문에서 중학교 수학선생님 446명에게 물었더니, 수학을 포기한 학생이 절반 이상이라고 답한 분이 36명, 3분의 1 정도가 포기한 것 같다는 분이 155명이었습니다. 적어도 43%의 선생님이 수업 중 3분의 1 가량은 수업을 못 따라온다고 생각하면서 수업을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수학선생님과의 면담 이후 연이어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의 성적이 좋은 대학에 가기엔 아직 힘들잖아요? 애한테 관심이 있으시니 오늘도 오셨을 텐데 공부 많이 시키셔야겠어요."
"선행학습 금지라니, 교육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이죠. 방학 때 공부 많이 시키시고 다음 학기 준비 미리 잘해야 성적 오릅니다. 수업시간에는 개념 설명하고 진도 나가기 바쁩니다."
"이제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잘 생각해 보세요. 전략이 필요해요. 앞으로의 대학입시 추세를 잘 봐야 해요. 점차 내신을 강조하는 추세잖아요? 특성화고 가서 내신 잘 받고 별도 전형으로 대학 가는 방법도 있어요. 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부모들이 현실을 잘 보고 방향을 잡아야 해요."
저희 아이는 역사를 제일 좋아하고 사회와 국어도 좋아하고, 부모가 보기에는 대인관계지능이 높은 것 같아서 인문사회계열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고, 그래서 특성화고 쪽으로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당신의 큰아들은 공부를 아주 잘했고 역사는 특히 전국단위였지만(성적이 아주 좋았다는 얘깁니다) 앞으로 먹고살 것을 생각해서 공대를 보냈다고 하시네요. 취업난을 생각하면 대학보다 학과를 중시해야 하고 얼른 진로를 정해서 그에 맞춰 고등학교 진학 선택을 포함해서 준비를 시작하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동안 어찌되었던 ‘선생님’은 교육전문가라고 생각해왔던 제 생각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중학교도 대입을 위한 준비기관이 되어 버렸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실감이 났습니다. 저는 답답하고도 심란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던 아이에게는 수학선생님의 격려와 조언을,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여러 이야기 중 학급회장 역할을 적극적으로 잘한다는 칭찬과 공부도 더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는 정도만 전달했습니다. 복잡한 제 마음은 퇴근한 남편에게 풀어놓았습니다. 30분 상담한 이야기를 한 시간도 넘게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나서야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선생님 경력이 십 년이 넘는 지인은 선생님들 간에도 생각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고 말합니다. 특히 자기 아이 입시를 치러본 나이 드신 선생님들과 비교적 젊은 선생님들의 교육에 대한 시각과 가치관은 현실과 이상의 차이만큼 벌어져 있다고 합니다. 엇비슷한 연령대의 학부모들의 생각도 극과 극으로 다른데 20대에서 60대까지 섞여있는 선생님들의 생각이 비슷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나이와 관계없이 열린 시각을 가지고 계신 선생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실 인식의 차이일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10년 후, 20년 후의 세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면 과거의 세계관으로 미래를 속단하고 그 틀에 아이들을 이리저리 짜 맞추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때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선생님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식당이 아직도 없어서 교실에서 식은 점심을 먹어야 하는 학교에서 돌아오며 오래전 들었던 이 문구를 떠올렸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같은 생각을 하지도 않고 또 선생님의 모든 이야기가 맞지도 않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일컬어지는 ‘옆집 아줌마’의 이야기가 진리가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부모의 가치관과 교육관이 확실하지 않으면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불안한 부모는 공포 마케팅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내 아이가 필요한 부분에 맞추어 사교육을 활용하는 것과 막연한 불안감으로 사교육에 목매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나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를 기르며, 막연했던 나의 가치관을 돌아보고 가다듬습니다. 현실이라는 막강한 현장 속에서 하나하나 검증해 나가야 합니다.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부대끼고 대립하는 치열한 과정을 통과하면서 아이가 크는 만큼 부모도 자랍니다. 지난 한 육아의 시간 속에서 버려야 할 설익은 생각들과 지켜야 할 가치들을 점검합니다. 아마 두 아이가 없었더라면 저는 뜬구름 잡는 이상론자와 냉정한 현실론자 사이를 널뛰듯 오고 갔을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덕분에 다른 사람과 세상을 더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내 아이가 살아야 할 미래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중학교 상담은 여러 선생님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가족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니 내년에도 학교 상담을 꼭 가야겠습니다.
*참조 : 2015.7.22 발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박홍근 국회의원 공동 설문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