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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이제 엄마 Oct 07. 2020

꿈 많던 소녀, 서른셋, 평범한 엄마 그리고 평범한··

'사랑이 엄마'는 누구?


일곱살, 둥당둥당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오~ 나 피아노에 재주 좀 있는 ㄱㅓ 같아."

그때 나보다도 내 꿈에 관심이 더 많았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엄마가 이 다음에 외국 유학도 보내줄거야.

그러니, 꼭 피아노를 전공하렴."


그렇게 둥당둥당 피아노를 치던 어느 날,

끼익- 사고가 났다.

일곱살 여자 아이, 1톤 화물 트럭에 치였다.

떼굴떼굴 차체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온 사방이 피바다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여자 아이의 어머니는 실신했다.


삐요삐요-


눈을 떠보니 내가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이고 이를 어쩌니."

"쯧쯧쯧쯧, 이를 어째.", "보이니? 내가 보여?"

희미한 정신 넘어 자주 들려오던 말은,

"죽다 살아났네. 구사일생이야."라는 말이었다.

941···생? 내가 태어나 처음 알게 된 사자성어.

일곱살 여자아이가 처음 들은

구사일생의 의미는, '941···생'이었다.

'941···은 뭘까?'


여러번의 대수술을 마치면서

레지던트라고 불리던 한 남자 의사선생님이

"빨리 나아서 선생님이랑 결혼해야지." 하셨다.

참 인자한 미소, 참 따뜻한 목소리.

둥당둥당 피아노를 향해 있던 나의 꿈은,

'곧 의사 사모님이 될 것이다.'로 향해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을 환자복을 입고

병원 놀이를 했다. 그래도 더 튼튼하고

안전한 거로 쥐어주려고 엄마 아빠가

여러 번 따져보고 고른, 게 중에는

제일 비싼 목발. 하지만 나는 목발을 던졌다.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

'둥가둥가.' 그렇게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병원 복도를 목발도 없이

둥가둥가 걸어다니던

일곱살 여자 아이.


"넌 피아노에 소질이 있어. 꼭 피아노를 전공하렴."

"3개월이나 쉬었는데, 다시 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일곱살 여자아이는,

피아노로 다시 돌아왔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둥당둥당 피아노를 쳤다.

"오~ 내가 뭐가 쫌 되는 ㄱㅓ 같아!"

가끔 의사 선생님이 생각나기도 했다.

'의사 사모님이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4학년이 되고부터는 춤을 추었다.

"오~ 잘 추는데?"

한참 수련회에 가서 소위 잘 나가는

여자아이들이 장기자랑 무대 위를

쓸고 다니던 시절. 둥당둥당 피아노를 치던

여자 아이는 전교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춤을 잘 추었다. 휘황찬란한 무대위의

불빛들을 보면 가슴이 터질 듯

두근 거렸다.

"오, 난 아무래도 음악으ㅣ 천재인가봐!"


IMF의 한파가 심하게 불어닥친 다음해의 겨울,

그렇게 해외 유학까지 보내주며

내 든든한 백 역할을 해 줄 것처럼

내게 야망을 불어넣어주던 엄마가,

사라졌다. 연락 두절.


아버지는 내게 물으셨다.

"피아노를 계속 쳐야 하겠니?"

"때려치우죠 뭐. 어차피 재미도 없었어요."

그저 둥당둥당 놀이를 했던 것일 뿐.


6학년을 보내던 어느 날,

늘 꾸지람을 하셨던 담임 선생님이

처음으로 칭찬을 하셨다.

"오~ 글을 참 잘 쓰는구나.

이담에 커서 작가를 해도 되겠는데?"

최우수상이 찍힌 글짓기 상장.

'작가? 그따위 시시한 걸 왜 해.'

그때의 나는, 최우수상이라

내가 1반이었으면

전교생이 보는 단상에 올라가서

단독으로 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10반이었던 게 억울했을 뿐.


중학생이 되고 나서 어느 날 문득,

'연기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슴에 한이 많아 ···

이 한을 예술로 승화 시켜야겠어!

그래서 연극부에 들어갔다.


수업 시간 내내 자던 여자 아이,

방과 후에 번쩍 정신이 돌아온다.

휘리릭~ 연극부실로 날아들어간다.

'오호!! 여기가 내 무대야.'

그리고는 소위 날라리 여자아이3을 했다.


그렇게 날라리 놀이에 빠져 살던 어느 날,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2년 만에.

내게는 너무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그러자 엄마가 나를 다시 꼬셨다.

"피아노를 다시 치자.

넌 꼭 피아노를 전공하렴."

그렇게 둥당둥당 놀이는 다시 시작됐다.

"선생님, 제가 전공이나 할 수 있을까요?"

레슨 시간만 되면 꼭 묻곤 했지만,

"엄마, 저는 예고를 꼭 가겠어요!"

엄마를 기쁘게 했다.

피아노보다는 춤이 더 좋은데 ···.


그렇게 둥당둥당 피아노를 치던 어느 날,

엄마가 또 사라졌다.

'에잇!!!! 내가 이 따위 피아노 다시 치나 봐라!!!!'

그 후로 피아노 하고는 영영 작별을 하였다.


엄마는 옆동네에 거처를 마련하고

수시로 우리를 돌보기를 바랐지만,

이미 엄마는 내 백도 못 되었고,

나는 더이상 엄마가 크게 필요 없었다.


"난, 나대로 살 ㄱㅓ야!!!!"


'그런데, 나는 뭘하지?'


중학생 시절,

벼락치기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성적은, 전과목 평균 80점대를 유지하였다.

'이 정도면 꿀리지는 않겠네.'

영어 단어 스무개의 암기는,

쉬는 시간 10분이면 충분했다.

영어 점수도 상위권이었다.

영어책을 통째로 외웠으니.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은,

'정신 좀 차리면 공부를 곧잘할텐데···'라고

하였고, 수업 시간 내내 자거나, 먹거나하는

내 모습만을 본 친구들은,

영어 분반 수업에 내가 윗 반에 있자

"얘가 여기 왜 있어."라고 하였고,

성적 순위로 내가 국어 조장을 맡게 되자,

어떤 애는 ''얘가 왜 조장이냐.'' 며

조를 바꿔달라고까지 하였다.

"나도 조장 따위 관심 없거든??"


그렇게 꼴찌는 존심상 하기 싫어

벼락치기에 길들여진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의고사···라는 것에 충격먹었다.

첫 모의고사··· '이건 뭥미?'

친구들끼리 찍은 답을 불러주며

오엠알카드에 예쁘게 까만 동그라미를

그려나갔다.


댄스부에 가입하고 들락거리며

한창 동대문 밀리오레 댄스팀이 잘 나가던 시절,

밀리오레 댄스팀에 오디션을 보고 들어가

연습생이 되어, 연습실을 들락날락.

'백댄서나 되어야 되겠다.'

공부는 뒷전이고,

춤으로 이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야망을 다시 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생 1학년 시절의 가을,

운명처럼 한 남자 아이를 만났다.

키 185에 참 잘 생겼다.

한참 길거리 캐스팅이 붐을 일으키던 시절,

길거리 캐스팅으로 소위 잘나가는

엔터테이먼트에 배우 연습생인 남자아이였으니 ···.


사건의 일말은 이랬다.

친구가 소개팅을 받는다.

내게 같이 가자고 졸랐다.

내게 먼저 잡힌 약속이 취소되는 바람에

그 친구의 소개팅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소개팅 남자는

나를 눈여겨봤다. 계속.

'왜케 날 보는 거야.' 싶었던 나는,

환한 불빛 아래에서

그 남자아이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ㄷㅐ박! 왜케 잘 생겼어?????'


그아이는 나처럼 조막만하고

토실토실 귀여운 여자아이를 좋아했나보다.

우리는 커플이 되었다.

교복 입고 만나는데. 대박.

키가 너무 커서 쩌어~~~~ 멀리에서도

저 작은 얼굴이 보여. 모든 사람들의 머리는

다 그 아래.. ㄷㅐ박!! 연예인이랑 사귄다!!!!


그런데 ··· 그때의 만남이 대게가 그렇듯

곧 ··· 깨졌다. 차이진 않았다. 찼다.

근데 찬 게 아닌데, 할튼 일이 꼬였다.

할튼, 이별했고,

생에 처음으로 나는 정말 많이 아팠다.


그리고 다 때려쳤다.


"나 공부해야 되겠어!!!"


어설프게 춤을 춰서는,

그 잘생긴 남자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꼭 예쁜 여대생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길 ··· 그리고 글을 쓸거야.

드라마작가가 되겠어. 그래서 꼭

내 사랑을 내 글에 배우로 쓸거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넌 배우로, 난 작가로.


그렇게

6학년 어느 날,

'작가를 왜 해. 개나 줘버렷!!!!'

이라고 말했던, '작가'라는 꿈을

열일곱살부터 소중히 꾸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작가'라는 이름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공모전에 투고해,

'당선'이 되어,

대학로에서 연극 공연을 올리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

우리의 어릴 적 만남이 대게가 그렇듯,

자연스레 나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사랑까진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미쳐'있더라 ···.

'미쳤다. 한 남자에 미쳤다.'

미친 사람이 그 미침에 대해 알 수 없듯이,

나 또한 그 미침에 대해 알질 못했다.


그냥 마구 힘들었다.

'왜케 나를 힘들게 하는 거야. 오ㅐ!!!'

그 꿈 많던 여자 아이가,

다른 한 남자에 빠져 그 공간에 갇혀,

빙글빙글 챗바퀴를 돌며 살고 있었다.

'깜깜해. 어두워. 여긴 대체 어디야?'


그 순간, 한 손이 내게로 뻗어졌다.

"내 손을 잡아볼래?"

한 줄기 햇빛.

"당신은 누구세요?"

말없이 짓는 빙그레 미소.


그게 바로 신랑이었다.


"오, 저를 이 진흙탕에서 구출해 주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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