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일기(임신 전)
나는 우선, 병원부터 옮겼다. 한동안 엄마라는 부푼 꿈으로 나를 한없이 행복하게 했던 공간이, 어느 날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안겨준 후로, 나는 다신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잃어 너무 가슴이 아프시겠어요.’라는 단 한 마디의 말로도 나를 위로하지 않는, 너무나 단호한, 그곳.
내가 유산 후 무엇보다도 두려웠던 건, 나의 유산이, 유산이 많은 주차를 지나고 나서의 유산이었다는 것이다. 유산은 보통 아가의 심장소리를 듣기 전에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8주차쯤에 아가의 너무 건강한 심장소리를 들었고, 작게 생긴 아가의 형체까지 확인했는데, 유산이라니 …. 뭔가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내 몸에 혹시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
유산이라는 건, 초기를 지나고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극히 적은 경우였다. 내 주차도 마찬가지였다. 될 수는 있지만, 확률적으로 높지는 않은 시기 …. 그래서 유산 후로 나는 내 몸에 굉장히 예민해졌다. 조금만 이상한 것 같아도 문제가 있는 것만 같았고, 여러 산부인과를 다니게 되었다.
유산 후 병원을 다시 선택해야될 때,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나를 안심시켜줄 수 있는, 의사가 있는 곳’이었다. 내게 의사의 실력 따윈 더 이상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건강해요.’, ‘건강한 아가를 곧 다시 만날거에요.’라는 말들로 ‘다시 건강한 임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의사가 있는 곳’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런 의사를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한 의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
그 의사는 나의 유별난 걱정을 있는 그대로 다 들어주고 걱정해주되, 끝은 언제나, “걱정말아요. 생리 한 번만 하면, 언제든 아가를 다시 만날 기회는 있답니다.”였다. "유산 후 3개월 몸조리를 하라는데 …." “아니에요. 의학적으로 생리 한 번만 하면, 몸이 원상태로 돌아왔다는 거예요. 세 달을 쉬나, 한 달을 쉬나 똑같아요. 상관없어요.” 그렇게 단호하게, 나에게 단호한 희망,을 안겨주던 의사.
내 나이 서른셋, 신랑 나이 서른여섯 …, 적지 않은 나이였다. 그리고 나는 애초 서른넷이 되기 전에 아가를 꼭 만나고 싶어했는데 …….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다시 아가를 데려오고만 싶었다.
유산 후 나에게 재임신은, ‘너무나 바라는 일’ 이었지만, 또 ‘너무나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임신을 다시 한다고 해도, ‘두렵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초기를 잘 견뎌낼지 …, 임신하는 기간 내내 너무 불안해하지는 않을는지 …. 어떻게 ’다시‘ 걸어가야만 되는지 …….’
12월 …,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둘이서만 보내게 되었다. 뱃속 아가와 함께 행복할 꿈을 꿀 줄 알았던, 그 해의 크리스마스와 마지막 날,
‘우리는 여전히 둘만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