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 자체의 기쁨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

by 디 마이너 윤미선


삶에는 정해진 목적이 있을까?

우리는 흔히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 "더 완전해져야 한다"는 말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의 목적은 외부에 주어지지 않는다.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어떤 역할도 주어지진 않았다. 미리 정해진 사명도 없다. 오직 나의 본성을 온전히 펼치며 살아가는 순간, 존재 자체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비교와 이상화된 완전함에 스스로를 얽어매는 한, 아마 우리는 그 충만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 안의 잠재력을 조금씩 실현하며 본성에 맞게 행동할 때, 기쁨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다. 기쁨이야말로 '나는 지금 완전하다'는 삶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번아웃과 공존하는 삶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끝없이 몰아치는 업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존엄성이 무너질 때 찾아오는 소진.
<<번아웃의 종말>> 책에서 말한다.

“번아웃은 결국 상대방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이는 번아웃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보통은 제대로 자신을 컨트롤 하지 못해 번아웃이 왔다며 자신을 탓한다. 열심히 애쓴 나를 인정하고 품어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나를 더 깎아내리고 만다. 하지만 번아웃이 오는 진짜 이유는 사회에서 나를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아서이다.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더 나를 갈아넣게 만드는 구조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할 때 각자는 자신과 삶의 중심을 잡으며 나아갈 수 있다. 그럴 때 일하는 사람은 기쁨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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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성취의 크기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존재 자체로 충분하며 기쁨은 지금 이 순간에 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나 혼자만의 완전함이 아니라, 타인의 존엄을 존중하며 서로를 지켜줄 때 비로소 더 크게 나온다.

우리는 완전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존재 자체로 완전하다. 더 많은 것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순간, 나답게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내 존재의 완전함을 느껴보자. 그 안에서 수많은 내 자원을 발견하면, 이 순간을 즐기면서도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존재!

전부터 존재라는 단어만 들으면 가슴이 뛰었다. 지금 내가 존재함이 가장 중요한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막연했고 자세한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마도 나 자신 그 자체를 수용하고 인정할 때 가장 기쁘고 충만하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존재 그 자체에서 오는 기쁨,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존엄.
그 안에서야말로 우리는 더 단단하게, 그리고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 시작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잠시 눈을 감고 숨 고르기,

가벼운 산책으로 몸 깨우기,

감사한 마음 세 줄 써보기 등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곧 삶의 리부트 버튼이 되고 내 존재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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